비오는날 엄마의 기차 여행
막내이모 보러 갈 마음에
아침 커피도 이모랑 마신다고 내치신다.
사라진 우편물 확인차 우체국에 들렀다 방향을 바꾼다.
내 할 일은 먼저 배려를 해주시는게다.
발길 닿는대로 행선지 상관없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이리 가야한대도 발길대로 가신다.
내려서도 마찬가지. 이모가 차갖고 와서 기다릴거라고.
팥죽집에서 그랬었다. 직진본능이신가봐요.
노인들 잔뜩 줄서 기다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치열한 알력까지 작용하는 그곳에
같이 줄서서 세 번째 차지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자존심이 있지.
계단을 오르신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4호선은 무지무지 깊고 돌고 하는데 말이다.
나는 합쳐진 엄마 짐까지 끌어야 하는데 말이다.
비오는 날 기차여행을 시켜준다며
너무 좋다고 하신다.
1호선에 승객이 없어
앞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엄마 차지다.
담쟁이, 능소화.... 푸른 기찻길
서보 쓰는 잉크펜의 잉크가 떨어졌다.
동아 jell zone 0.5mm 참 좋았는데
지금까지 1,584자를 노트에 썼다.
어디에선가 하나 다른제품으로 또 찾아 이제 푸른 색이다.
이건 잉크가 너무 많이 나와 노트도 배이고 손옆구리에 많이 묻어 옮겨온다.
에고.... 종이도 뜯어먹어 초서 획 회전이 잘 되지 않는다.
많은 펜들의 잉크가 굳어져 있어서 뜨거운물컵에 담가보고 굴려 써보고...
버린다.
텀블러와 보온병을 모두 꺼내 한 주전자 물을 끓여 붓고
저녁무렵 식은 것들은 모두 대문앞에 줄세워놓았다. 모두 없어졌다.
오빠가 3년째 방치된 내 작품을 폭우에도 불구하고 실어다주었다.
그쪽 길이 아닌데도 그쪽 길에 볼일이 있는 척 지나가다 들른 척 실어다 준 것이다.
엄마집 많은 우편물이 먼지를 덮어쓴데다 비를 맞아 얼룩지고 우그러져있다.
수신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것들도 쌓여 있다.
일제시대때 지은 겨우 몇 평 살 사람도 없는 한 주택 소유 90넘은 노인에게
단지 땅값이 비싼 곳이 되어버렸다는 이유로 나오는 엄청난 재산세 고지서를 가지러 갔다.
그래서 의료보험료도 엄청난 고지서도 같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사와서 너무 멀어 처음 학교를 지각했었고
차를 바꿔타야 하는 광화문 지하도
다른 방향 출구와 깊이 들어가 반대편으로 건너나와야 하는 것을 구별할 줄 몰라
날마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헤맸었다. 나오면 제자리 또 들어갔다 나오면 아까 그자리.
체력장이나 교련을 한 날은 잠이들어 깜깜한 종점에서 깨기도 했다.
책가방 위에 체육복 가방이나 교련가방을 엎드려 베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창피하더라도 그냥 졸았다면 깼을텐데 아주 깊이 잠들어버린 탓이다.
이후 잠들지 않도록 졸기로 했다.
많은 착한 사람들이 곁에 함께했던 시대라서 안전하게 잘 자라왔다.
아직도 아버지 앞으로 수신물도 있다.
壬戌 秋 雅嵐.... 처음 액자까지 갖춘 구양순체 작품이다.
善爲至寶用無盡
선은 지극한 보배라서 써도써도 다함이 없다.
어제 친구 요양원에 가서
고생많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아픈 아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맡겨두고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마감하고
만나러 와서는 직원들 통근차 역할까지 하시는 보호자를 생각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종일 누워만 있는 그분들을 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단단한 재료 사각한 재료 무른 재료 신맛 단맛 고소한맛 따로따로 씹고 느끼고,
만나고싶은 사람 만나고, 할 수 있는 일과 하고싶은 일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는 지금.
누구에 의해 먹여지고 만들어지고 끌려다니고
내가 주도한다는 것과, 반대로 그런 나에 의해 사육된다는 것에 대하여....
단 하루만이더라도 말이다.
저 플러스펜만은 뜨거운물에 담그면 버린다.
흰 촉의 접합부분이 녹았는지 완전히 빠져버렸다.
폭신한 솜같은 것으로 채워진 잉크대는 재생해야겠다.
끝부분에 손가락끝으로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다시 끼워쓰면 수성이라서 새것처럼 오래 쓸 수 있다.
다른 플러스펜에 바꿔 끼워 쓰고자 잘 둔다.
이 역사깊은 프러스펜은 필기감이 참 좋다.
오래 눌러써서 굵어지면 또한 그 느낌이 좋다.
모나미 플러스펜 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