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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임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법예술, 최은철)

雅嵐 2011. 1. 15. 12:10

임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일반적인 임서방법의 문제점과 그 대안 -

 

  서법을 학습함에 있어 臨書(글씨본을 보면서 글씨를 씀)의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임첩은 學書의 기초이므로 필수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본다.

  기초가 튼튼함으로써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臨帖의 기초가 착실하게 행하여짐으로써 서법창작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임첩의 방법과 과정은 결과적으로는 서법창작의 질적 수준을 결정하게 한다.

  그러나 많은 초학자 또는 동학들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요소들이 있어, 이를 지적하고 바른 임첩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한다.

 

<좋지 않은 임서방법의 유형>

 

  먼저 임서방법 가운데 좋지 않은 방법으로 임서하는 학서자의 형태를 네 종류의 유형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見異思遷(견이사천 : 다른 것을 보면 생각이 바뀜)이다.

 

  학서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스승의 계도와는 관계없이 자기에게 인상적이었던 것부터 임서를 시작하게 되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서체나 첩을 보면서 처음의 것에는 별다른 성과 없이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면, 顔體(안진경)의 글자가 배우기 좋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여 臨習하다가 歐體(구양순)를 보면 또 그것을 학습하고, 다시 柳體(유공권)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옮기는 식으로, 계속하여 새로운 것만 추구하다가 결국은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만다. 임첩에는 반드시 전심으로 할 것을 깨달아야 하며, 비첩을 선택하기 전에 그 법첩의 자체가 본인에게 적합한지 또한 본인이 좋아하는 서체인지를 잘 판단하여 선정하고, 일단 정하였으면 堅持(어떤 견해나 입장 따위를 굳게 지니거나 지킴)하여 성공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곧 학서방법의 기본자세 가운데 하나이다.

 

둘째, 流水練習(유수연습: 흐르는 물처럼 연습함)이다.

 

  예를 들면, 한 권의 字帖을 머리부터 끝까지 하루에 몇 자이건 써 내려가는 형으로, 심지어는 하루에 한 권의 첩을 모두 써 보고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여 나름대로는 열심히 또 그렇게 임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첫째 기억할 수가 없으며, 둘째 매 글자의 인상이 깊지 않으므로 본받는 것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반드시 연속하여 며칠이고 일정한 법위를 임습하여 숙달이 된 후에, 다음을 임서하여야 하는 것이다.

 

셋째, 一曝十寒(일폭십한: 하루는 덥고 열흘은 추움)이다.

 

  적지 않은 동학들이 앓고 있는 소위 냉열병이다. 좋을 때는 하루에도 몇 십 장을 쓰기도 하나, 그렇지 않을 때에는 붓을 놓고 쉬기를 일주일도 좋고 열흘도 좋다. 그렇게 하기를 마치 어부가 사흘은 고기를 잡고, 이틀은 그물 짜듯이 하여, 결국에는 하나도 제대로 이루는 것이 없게 된다. 오직 견지하여 끊임없이 연습하고 숙련하여, 농부가 호미로써 밭을 일구어 나가는 것과 같이 함이 옳은 것이다.

 

넷째 유형으로는 知難而退(지난이퇴:어려움을 느끼면 곧 물러남)이다.

 

  꽤 많은 초학자들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임서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쓰면 쓸수록 모양이 비첩과 다름을 느끼게 되고, 노력하여도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이전보다 퇴보하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어, 결국 비관하고 실망하여 스스로를 원망하며 학습하던 첩을 바꾸거나, 또는 그쯤에서 학서를 포기하기도 한다.

 

<心到 · 眼到 · 手到의 세 가지 집중>

 

  이런 식으로 한다면 모두가 낭비로 끝나게 될 뿐 아무런 소득도 없게 된다. 비록 손과 안목을 병행하여 발전되기를 바라지만, 안목에 비하여 손끝은 더디게 발전됨이 개개의 학서자에게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두고 眼高手低(안목은 높고 손<재주>은 낮음)라고도 하지 않는가.

  만약 임서를 하여도 흡족하지 않다면,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거나 법첩자의 用筆 및 結體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했음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지, 상심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첩의 臨寫시 반드시 ‘三到’를 갖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心到(마음을 집중함), 眼到(시선을 집중함), 手到(손을 집중함)인데, 이 삼도를 절대적으로 중요시하여야 할 것이며, 그중 제일은 ‘심도’인 것이다

  여기에 보충하여 말하자면 유관 서법이론을 많이 보고, 그 속에서 쓰고자 하는 첩의 특징을 찾아 학습해 나간다면, 몇 배 쉽게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를 토대로 좀 더 구체적인 임서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선택한 비첩을 어떻게 학습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선 二讀(두 번 읽음)을 권한다. 즉, 임서에 앞서 선택한 법첩을 일단 黙讀(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글을 읽음)을 통하여 전반적인 인상을 갖도록 한다. 더욱 좋은 것은 자첩에 있는 서문 또는 후기한 설명 등까지도 자세히 읽는다. 그리고 그것을 쓴 서법가가 있다면, 그의 생애와 師承淵源, 創作背景, 書法史上의 작용과 지위 등을 이해하고, 자첩의 기본적인 특징과 풍격을 이해한다.

  그러고 나서 제 2독에서는 붓 또는 경필 등으로 투명한 종이를 자첩 위에 놓고 그대로 베껴 써보는, 아니 그려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摹寫(모사)라고 하는데, 기본 점획의 모양과 자의 외형을 알 수 있으며, 인상도 심후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어쨌든 제 1독에서 전체적인 자첩의 정신과 풍모를 파악했다면, 제 2독에서는 자첩의 전체를 자세히 관찰하고 체험하며, 전체적인 것에서부터 국부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자의 용필과 결체의 미세한 것들을 파악한다.

 

<비첩 학습에는 二讀이 필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點, 劃, 撇(삐침), 捺(파임, 눌렀다 벋는 획)획 등에 대하여 진행과정을 분석 비교하고, 또 방필과 원필 관계 및 轉鋒(붓끝을 굴려 옮김)과 折鋒(붓끝을 꺾어 옮김) 그리고 필획의 粗細(굵거나 가늚), 長短, 大小 등등을 분석하고, 나아가 자의 결구에 있어서도 內緊外松(안으로 긴밀하고 밖으로 성글음)함과 上緊下松(위쪽으로 긴밀하며 아래로 성글음)함을 살피고, 자형에 있어서는 方正(네모지고 반듯함)함과 狹長(좁고 긺)함의 여부 및 기타 大小, 高低, 伸縮(늘어남과 줄어듦), 揖讓(모음과 양보함), 疏密(성긂과 빽빽함) 등등을 세밀히 분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임첩하기 전의 기초단계이며, 눈의 훈련으로, 이른바 안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함으로써 임사의 단계에서 손이 그에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이독의 단계를 거쳐, 두 번째로는 一背(자첩에서 보았던 것을 생각하여 기억해 냄)를 한다. 즉, 이독의 기초 위에 첩을 덮고 머릿속에 떠올리며 成字在胸(가슴속에 글자를 이룸)이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함인데, 만약 분명한 字跡이 기억되지 않았거나, 또는 개별의 획에 있어 提(끎), 按(누름), 轉, 折處가 분명치 않을 때는 다시 첩을 보며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일배는 단련하여 서사자의 기억력을 더욱 증강시키는 단계로 심도의 훈련이다. 가슴에서 살아나올 수 있도록 자첩의 특징을 부단히 발현시키고 규율을 찾아내어 필획의 使轉(써가다 회전함), 起止(들어세워 멈춤), 輕重, 提按의 세부적인 것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偏旁部首之間의 承接(이어 붙음), 呼應, 顧盼(끊기는 듯 이어짐), 揖讓 등의 관계를 파악하여 기억해 내는 것이 일배 임첩의 단계로, 간단히 말해서 마음에서 먼저 얻음으로써 임사시 손이 그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학자 가운데는 우선 쓰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임서방법의 네가지 단계>

 

  다음, 세 번째 권하는 방법은 일배를 바탕으로 직접 임서하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四臨(네 단계로 임서함)이다.

  제 1임은 한 획 한 획을 보고 쓴다. 더욱 좋은 방법은 하나의 글자를 보고 바로 쓰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은 상하의 필세가 더욱 연관되어 유창하게 쓸 수 있겠으나, 초학자에게는 용이하지 않으므로 일정한 기초 위에 점차 이런 방법으로 임사한다.

  제 2임은 제 1임에서 자기가 쓴 자를 자첩의 글자와 대조하여 用筆로부터 結構에 이르기까지(用墨까지 포괄하면 더욱 좋다) 자세히 살펴서 차별점을 찾은 후 다시 三思而寫(세 번 생각하고 씀)하도록 한다. 그래서 제 2임에서는 기본적인 形(모양)이 같도록 하는 것으로, 形似를 중요 관건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제 3임은 제 2임의 형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단계이다. 즉 제 2임의 자에서 아직 작은 부분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그것을 고쳐 쓰는 것이다.

    제 4임은 하나의 글자를 3단계에 걸쳐 임사하여 형사의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背臨(첩을 보지 않고 임서함)을 하는 것이다. 이는 제 3임까지의 과정에서 얻은 뜻을 더욱 공고히 하는 단계이며, 뿐만 아니라 서사가 더욱 유창해져서 神似(정신이 같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임서의 최종목적임과 동시에 최고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四臨의 중요한 것은 손의 훈련으로서, 한마디로 정확한 手感(손의 느낌)을 갖도록 하여 形이 같고 神까지도 같게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표면상 보이는 글자를 어느 한 부분의 취미에 편중되어 기계적인 서사만 일삼는다면, 이른바 抄書(베껴 쓰는 글씨)를 면치 못할 것이며, 아무리 애를 써도 부족함의 숙련만을 거듭하게 되고, 그것은 또 뿌리 깊이 박히어 하나의 악습을 만들게 되며, 문제는 날로 더욱 심각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설명한 세 단계 훈련법은, 기실 임서과정 중에 각종 감각기관의 功能과 대뇌의 공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최상의 효과를 거두자는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감히 권하는 바이니 同道諸賢의 시험 있으시기를 바란다.

 

                  - 최 은 철, 월간 서법예술 96~98쪽(이에 약간의 보충과 자구 수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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