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책만 보는 주부

우리/우리동네

<남부순환로 따라 헌책방 둘레길 - 사람이 있는 책창고>

雅嵐 2014. 10. 25. 01:57

   비오는 날은 헌책냄새가 그리워진다. 모든 일정에서 놓여지는 날 헌책방이 대부분 지하에 자리잡고 있기도 해서 비와 헌책냄새는 밀착되어 있다. 사당에서 서울대까지는 관악산 밑에 조밀하게 둘러싸여 있는 주택가들 밑으로 남부순환로가 있다. 큰 대로 바로 뒷길을 택하면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와 둘레길과 만나는 작은 길들이 있고 10~20분 마다 큰 길 쪽으로 나가면 다리를 쉬기 알맞은 거리에 헌책방이 하나씩 있다.

우리 동네 헌책방 책창고(582-1617)에서 남부순환로 길 건너 사당로 26길에 책을 쌓아둔 중고나라(581-3196)를 들여다본다. 다시 큰 도로 쪽으로 방향을 정해 까치고개 생태길까지 걷기 10분 내려가기 10분 양쪽으로 흙서점(884-8454)달마헌책방(811-1256)이 횡단보도로 건널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 10분 정도를 걸으면 도토리중고서적(877-0100)이 있다. 이제 남부순환로에서 서울대쪽으로 걸으면 공기는 더욱 맑아지고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어 고시촌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대교고서(872-7326)를 비롯한 여러 헌책방이 눈에 띈다. 내 둘레길 걷기는 그렇게 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서너 시간이 되기도 하고 종일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새로운 곡도 오래전 듣던 곡과 비슷하다. 바흐 그리고 비틀즈 이래로 표절 아닌 것이 없다는 말도 생겨났다. 책도 사서오경 그리고 인문학이 풍요했던 어떤 시기 이래로 행간의 긴장감이나 감동의 깊이는 점점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감정과 이야기를 응축시킨 시집에 매료되고 헌책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제목만 보고는 알 수 없는 책. 아무리 온라인시장이 발달해도 헌책은 둘레길 걷듯 발로 즐겨야 한다. 책방 주인에게 책을 묻지 말고 분야를 묻는다. 그리고 모든 책을 오랫동안 넘겨보아야 보물이 있다. 십여 년 전 자원봉사를 할 때 헌책을 정리하다 진짜 보물(10만원권 수표 한 장)을 발견해 회식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다지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지 않지만 소수의 애호가를 위해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책. 한 때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가 이곳에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불경기로 출판사나 서점이 문을 닫게 되어 들어온 새책들도 있다. 평생을 어루만졌을 법한 어느 한 분야의 책들이 자손들의 대를 잇지 못하여 버려진 책들이 고물상을 거쳐 이곳에 한 수레가 오기도 한다. 순환이 잦은 아이들 책들이 이쁘게 자리잡고 있거나 나처럼 지나치게 정리를 한다고 대문 앞에 내놓았다가 5분도 안되어 사라진 실수의 책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내용에 감동되어 구매한 헌 책의 내부>

 

 

 

 

 

 

 

 

 

1. 헌책방책은 생각보다 비싼 것도 있어요.

  “아저씨! 정가는 500원인데 왜 2천원이예요?”

  “값어치를 알고 잡으신 것 아닙니까?”

  사실이 그랬다. 꼭 참고해야 하는 책인데 신간서점에도 없고 도서관에도 없거나 보존이 필요해서 대출이 되지 않는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곁에 두고 늘 보아야 하는 책인 경우가 많았다. 대창서관 소화 10년 12월 발행 초서대자전은 정가가 4원 50전이니 내 주장이 머쓱해지는 일이다. 민영익의 난초도판이 여러 개 수록된 작품집도 그러했다.

얼굴을 보고 책을 보고... 책이 주인을 제대로 만났다고 판단이 되면 제시된 가격이 다시 반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몇 달이 지난 후 그 책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고 헌책방을 통해 연락이 오기도 해서 흥정한 가격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2. 헌책은 마음이 편해요.

  “개정판이 좋긴 하지만 하드카바라서 전철에서 읽기 불편한데...”

  “그러면 카바를 부~욱 뜯어 들고다니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아이젠하워는 학생들이 잔디밭을 넘어다녀 잔디가 자꾸 죽으니 울타리를 설치해달라는 경비원의 말에, 그러면 잔디밭이 밟혀있는 곳을 따라 학생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책으로 재판되면서 책의 폭이 좁아지고 하드카바로 멋지게 나오면 사실상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힘들어졌다. 가격은 몇 배 비싸지기 일쑤다.

  읽고는 싶지만 살까말까 망설여지는 책이 있다. 저장이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이곳에서는 조금 관심이 덜해도 대여받는 셈치고 살 수 있다. 헌책방에서 여러 손을 거쳐 보관하고 있는 책들은 어느 정도 평가를 받은 책들이다.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가져다주면 특별히 가격을 주지 않아도 다른 책 구매가격 속에서 자연스럽게 할인되기도 한다.

 

    다시 읽고싶은 세계명작이 있으면 어린이도서에서 골라본다. 특히 어린이책은 매우 싸고 종류가 다양해서 내 읽는 수준에 맞추어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3. 헌책은 새책의 씨앗입니다.

  그 뒤로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아주 오래 편하게 읽고 다시 헌책방에 돌려준다. 내가 얼마를 주고 샀고 그 책을 얼마를 보상받고 다시 그곳에 내놓는지는 이제 개의치 않는다. 독서 모임에서 내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이 주제가 되는 경우에는 주로 헌책방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전혀 관심 밖이었던 책에 반하게 되면 아주 많은 새책을 구매하여 나와 성정이 비슷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두고두고 다시 음미하고 싶은 책들과 곁에 두고 늘상 보아야 하는 책들은 새로 구매를 한다. 또한 절판되기 쉬운 시집은 서점에 갈 때마다 미리 살펴서 단 한 편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있으면 바로 사게 된다. 그렇게 헌책에 대한 나의 인식은 조금씩 깨우쳐 나갔다.

 

4. 헌책 속에는 선생님이 있어요.

  같은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었다. 헌책에는 밑줄이 있거나 훼손이 되면 그 값에서 다시 반값으로 내려온다. 나는 책의 반의반 값인 그 책을 선택했다. 성실한 밑줄과 참고자료의 방대함으로 인해 별지까지 붙여 책은 부풀어 있었지만 그 책이 내 스승님 같았다. 내가 찾아야 하는 수고와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성을 모두 동원하여 해설을 붙여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고전산문(태학산문선 아내의방 누가알아주랴 나홀로가는길 뜬세상의아름다움)을 읽는데 꼭 도움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한 권 밖에는 없어 낙서(그곳에선 낙서라 표현한다)가 많은 책을 구매하더라도 그 낙서에 어린 책과 사람과 추억이 함께해서 아련한 감성을 일깨워준다.

 

5. 인문학과 예술을 살려주세요

  지금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많은 도판을 수록한 책을 만나기가 어렵다. 혹 만나더라도 그 책값은 단위를 뛰어넘는다. 오래된 도판이라도 그 도판마다 깊이를 더해야 하는 일은 나의 몫이고 다양한 도판을 제시해 주어서 좋다. 펜화기법(우람) 표현기법(미진사) 펜슬드로잉(일본서적) 정밀묘사(재원) 발견자피카소(동방미디어) 피카소특별전(조선일보사) 중국정예작가초대전 호암수집한국미술특별전 명청회화전 외에도 헌책방에서 만나 날마다 보게되는 책들이 내 손 가까이 있다.

  인문학서적만으로는 경제성이 떨어져 전문적인 책들은 점점 새로 만나기가 어렵다. 소동파평전 한묵보감 중국서예의역사 서예전과 광개토왕비연구 한국한시1,2,3 중국간독시대 정조의시문집편찬 한문해석강화 한국한시의전통과문예미 해동시선 한글서예 동방서범 등과 서예분야 각종 법첩들이 그렇게 만난 책들이다.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원전을 찾아 문장을 오류없이 확정해야 하는 일이 기본과정이다. 사서오경과 그 해설판 고문진보 또는 춘향전의 다양한 판본까지 필요로 한다.

  서예분야에서 크게 도움이 된 것은 계간 잡지였던 서통을 만난 일이다. 낱권으로 한두 권씩 만나 참고하다가 합본을 하나씩 갖추어 지금은 전권을 갖추게 되었다. 대학원논문 과정에 크게 쓰임이 있었다.

  어떤 시인이 마음에 들어와 시집을 사려하면 절판된 책이 대다수다. 내가 너무 늦게 그 시인을 알았나보다. 간혹 다시 생각날 때마다 몇 개의 헌책방을 검색하다보면 내 손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시집의 경우는 첫판을 인쇄하고 나면 재판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어 절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우 훌륭한 시인의 시집은 나올 때 이미 갖추어 두었지만 시기를 놓친 시인들은 헌책방에서 가격대가 매겨진다. 내가 읽고 싶은 시집일수록 비싸고 잘 나오지 않는다. 내가 찾는 시인의 시집이 정가의 너댓 배나 비싸면 마음이 흐믓하다. 내 안목이 높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관식 송수권 가나인 박형준의 시집이 그러했고 김승희 이승하 신동엽 정진규 황동규 백석 김광규 김소월 김종삼 김해화 양정자 오규원 장경린 정지용 조태일 한하운 김기림 이원수 고은 사포 시인들의 시집을 아주 오래 기다려 정가 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했다. 그리고 아직도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인들의 시집이 있어 종종 가서 뒤적인다. 시 한 편 읽을 때마다 어렵게 구한 과정 이상으로 감동이 밀려온다.

  몇 명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는데 추억의 책들을 선별하여 주제를 정하고 나면 서점에서 사라진 책들이 많다. 혹 기간 안에 헌책방에서 발견하기라도 하면 있는 권수대로 주문을 한다. 전혜린 장미의이름 사람아사람아 함석헌 박사가사랑한수식 닥터노먼베쑨 샘에게보내는편지 등 우리 모임의 추억 속 책들은 세월과 함께 많이 묻혔음을 느낀다.

 

6. 나는 장서가가 아닙니다.

  헌책방에서 필요한 책을 구하기도 하지만 잘 읽지 않으면서 귀한 책이라고 소장만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다. 외국에서 사다 준 거대한 붉은색 영영사전을 내놓았고 한용운의 채근담 법정스님의 무소유 등을 내놓았다. 그 중 한용운의 채근담은 헌책방에 가져다 주고나서 무척 후회했던 책이다. 그 책 역시 고등학교 때 즈음 미림여고 근처 헌책방에서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여러 전집 중에서 채근담 내용이 좋아 사들였다. 자그마치 30년이 넘도록 몇 구절씩 넘겨보고 꽂아놓곤 하였는데 집에 다른 채근담이 여러 권이 있어서 짝이 맞지 않는 전집에 보태주고자(?) 특이한 생각으로 내놓았다. 내놓고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채근담을 찾을 일이 생겼다. 아뿔싸! 집에 남아있는 채근담은 모두 채근담후집이 없이 전집만으로 편찬한 책들이었다. 확인해야 할 문장은 후집에 있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밀려오는 후회는 역사적으로 그처럼 훌륭한 한용운의 책을 내놓았다는 내 정신세계였다. 몇십 년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껴보다가 한 순간의 실수였다. 또하나의 커다란 실수라면 내 키만큼 높게 쌓인 레코드판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대문 앞에 놓고 돌아섰다가 다시 나가보니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렇지만 늘 품고있는 기대 하나는 누군가도 그렇게 헌책방에 내놓은 책이 내게로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용운 기념관이나 나보다 더 애타게 그 책을 찾았을 어떤 사람에게 아주 비싸게 나갔을 것 같아서 감사하다. 역사적으로 훌륭하신 인물은 헌책방에서 그 뜻이 아주 높아진다.

  실수라면 직원의 실수도 가끔 감사한 일이다.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않아 선생님 작업실에 아주 오래되어 바래버린 개자원화보라는 책을 발견했다. 무척 궁금했지만 차마 만져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서예전문 출판사 하나를 검색하던 중에 다자원화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서체의 특징이 혼동된 것으로 판단되어 바로 그 헌책방으로 가서 내용을 보자 했다. 가격 또한 차문화에 관련된 책으로 분류되어 너무 저렴하게 매겨져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귀한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경우도 생긴 것이다. 제대로 입력되었다면 다른 애호가들이 먼저 찜해서 내 손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정 최정균의 정창여회라는 작품집도 제목만으로는 남정선생님 작품집이라는 인식이 안되어 내게까지 오지 않았나 한다.

  그 외에도 한자능력시험에 필요한 학습지나 기출문제집은 급수별로 여러 권이 필요하기도 하고 배정한자나 급수체계가 종종 바뀌어서 계속 새로 구매하기는 부담스럽다. 급수체계나 배정한자는 주최측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이나 학습자료를 참고로 하여 수정하고 기존에 나와있는 학습지를 헌책방에서 구해다 쓴다. 여러 출판사의 장단점을 고루 취합하여 내 자료를 만들다 보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 간혹 구매한 헌책의 전주인이 너무 열심히 공부하여 공란이 적은 경우에는 옛 습자지를 이용하여 덧쓰면 된다. 각종 시험 참고서들을 헌책방에서 사기 꺼려하는 것은 규정이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제대로 체계를 알고 깊이 공부하면 개정된 몇몇 부분이 혼란스러워 틀릴 가능성은 극히 적어진다.

 

7. 남부순환로를 따라 헌책방 거닐기

 

- 우리동네 헌책방 책창고(북어게인)

  책창고는 나의 놀이터이다. 나는 이 책방에 회원등록이 되어있지 않다. 집에서 몇 발짝이면 가게 되어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책방으로 직접 가서 내용을 본다. 일산점이나 길동(지금은 통합됨)에 있는 것은 미리 부탁을 해두면 하루 안에 책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올 때는 그 책 뿐 만이 아니라 몇 권의 책을 더 안고 나오게 된다. 바빠서 얼마간 들르지 않으면 또 새로운 귀한 책들이 들어와 있다.

  어느 분이 주인인지 직원인지 사당동에서 남현동으로 옮겨오기까지 다섯 분의 얼굴을 기억한다. 한 분은 나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셨던 분이기도 하고 또 한 분은 내 정신을 아주 많이 일깨워주신 분이다. 지금은 또 다른 분과 조선시대와 근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랑 같은 시대 살기를 좋아하는 분이 또 있다.

  내가 내놓은 책과 가져가는 책이 자유롭기도 하고 철저히 따지기도 하고 때로는 회원가를 적용해서 할인해주기도 한다. 큰 금액의 책을 감사히 구할 때는 아무 말 없이 가격을 치르기도 하고 말을 걸고 싶을 때는 깎아달라고도 한다. 가격에 사람냄새가 난다 . 시장에 간다고 나가서 책창고에서 사라지고 종일 행방이 묘연한 때도 책창고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다.

 

<자주 다니며 구매해서 쓰임새가 되고 있는 책들 사진>

 

 

 

 

 

 

 

 

 

 

 

 

 

 

 

 

 

 

 

 

 

 

 

 

 

-버스에서 내다보이는 흙서점

  낙성대 정류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버스타고 가다가 시간이 여유로우면 내리기도 하고 서학연구소에 논문공부를 할 때도 종종 들어간다. 늦게까지 열려있어서 친구 만나고 오는 길에도 미리 내려 책을 살펴보고 한 정거장을 걸어 내려오면 되는 곳이다. 주인이 앉아있는 내실같은 곳이 있는데 가끔 그 속에서 귀한 책들을 찾아내준다. 그 속의 책들이 궁금하지만 아직 들어가봐도 되는지 말을 걸지 못했다. 밖에 있는 책들도 미처 다 살피지 못하는 까닭이다. 오프라인이면서 서울대생 학생들이 줄을 서는 셔틀버스가 서는 곳이라서 자주 가서 뒤적이는 사람들이 임자가 된다. 책값이 싸다.

 

- 헌책수레로 알게 된 달마서점

  숭실대 근처에서 유명했던 헌책방인데 낙성대정류장 흙서점 맞은편으로 이사와서 자리잡고 있다. 비슷한 크기의 간판이 많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곳인데 버스로 지나가다가 헌책수레 한가득 들어가는 것을 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주인이 인문학 지식이 깊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전공이 고전 분야이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 높이 있는 책도 마음껏 살펴보라 한다. 한글서예 책과 시집 몇 권 그리고 중국에서 발행된 법첩 재고도서 들을 사들고 왔다. 그곳에서 구입한 법첩은 보면 볼수록 선의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처음 접해보는 황정견의 초서작품이라서 서예에 대한 안목을 한 단계 올린 느낌이다. 

  그런데 달마서점 간판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종종 찾지 못한다. 혹 없어졌나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유를 알았다. 낙성대 지하철 5번출구 바로 옆이라서 가려지기도 하고 출구지붕 높이와 간판높이가 비슷한 까닭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간판은 없고 출입문과 그 옆에 붙인 스티커 간판이 전부이다. 간판가격이 백만 원 내외이니 새로 이사한 헌책방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 갈 때마다 주인이 쇠고 있다. 흰 머리도 늘어가고 가끔 어머니가 챙겨다주시는 반찬의 고소한 냄새가 한 술 덜어달라고 하고싶다. 그만큼 부지런히 책을 정리해서 아주 깔끔하고 정신이 살아있는 책들이 많다.

 

- 2층에 자리잡은 도토리중고서적

  헌책방에서 보물찾기 지도로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남부순환로 헌책방 둘레길 중에 유일하게 다녀보지 않은 곳이다. 5년 정도 되었다는데 수많은 헌책들이 깨끗하게 분야별로 잘 정돈되어 꽂혀있다. 시집코너가 출판사별로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아직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2층이라서 그런지 비오는 날에도 헌책냄새가 나지 않는다.

 

- 복사되는 동안 대교고서(도동고서)

  오래 전부터 서울대 근처 신림동은 고시촌이라고 했다. 대학도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복사와 제본이 특화를 이룬 곳이다. 대학시절부터 다녔던 곳이라서 다량의 교재를 복사할 때는 그곳으로 가는데, 복사를 맡기고 천천히 걷다보니 많은 헌책방들이 눈에 들어온다. 발길 가는대로 여러 곳을 드나들지만 그중 근래 이름이 바뀐 대교고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점 주인은 먹물을 한 대접 가져다 놓고 헌 신문지에 붓으로 글씨만 쓰고 있다. 가방 밖으로 나온 내 서예복사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름을 묻는다. 이름으로 불러지는 소리에 그 사람의 인생이 있다고 한다.

  왕탁서예에 대해 깨우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수량과 조맹부 그리고 황정견 갈 때마다 내 서예를 일깨워준다. 서예교재 이야기도 나누고 책을 고르기도 하고 서예 관련 헌책 중에 교재로 보급할 만한 책들을 사들고 왔다. 복사물과 헌책들의 무게가 꽤 무거웠지만 바로 앞에 집까지 오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편하게 앉아서 올 수 있었다.

가끔 짐이 적으면 관악산 줄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와 풍광을 감상하며 서울대를 지나 고개를 넘고 복잡한 사거리에서 남부순환로를 따라 집까지 걷는다. 작은 재래시장부터 인헌동 원당시장까지 볼거리도 많고 살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간간이 헌책방을 만날 수 있다. 1985년 1800원에 출간된 송수권의 시집 <아도>를 만원주고 구매했다. 서점에 없는 책을 구해 정말 기쁘다. <별아래 잠든 시인 송수권 이성선 나태주 3인 시집>을 함께 구매했다.

 

- 만화 중고 전문 서점 코믹114

  우리 동네에서 이수역 쪽으로 걸어가면 중고만화를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창고 같은 서점이 있다. 책을 잘 읽던 아이가 중고생으로 성장하면서 만화에 심취해 책정리를 도와준다고 겨우 한 박스를 빼앗았다. 애지중지하던 마음에 비해 너무 저렴한 헌책가격에 만화전문서점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다. 미리 전화하고 수레를 끌고 출발했지만 반도 못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았다. 지나가던 한국야쿠르트 아주머니께서 그 수레에 아이책을 얹어주시고 대리점에 이르러 다시 새 수레를 빌려주셔서 무사히 운반할 수 있었다. 만족할 만한 가격으로 중고만화를 정리하고 둘러보니 참으로 중고만화와 소설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곳에도 20년이 넘어가도 애착을 갖는 고전 만화들이 있었다. 엄희자와 민애니 부호등 내 기억속의 만화가들을 떠올리며 아직도 가끔 캔디를 읽는 나를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곳이었다.

(http://blog.naver.com/3554abc/125079832, http://www.comic114.co.kr)

 

 

- 멀지만 헌책통합검색으로 가까운 마산 부림서점

  집 근처 헌책방 책창고를 직접 가보기도 하지만 필요한 책을 찾을 때는 검색을 먼저 거친다. 남현동과 일산점 두 군데로 나뉘어 있어서 일산점에만 있는 책이면 미리 배송을 받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곳 모두 없다면 책창고 홈에 연계되어 있는 ‘고고북 통합검색’을 하여 찾을 수 있다. 필요한 책을 찾아내어 서울시내 헌책방을 다니기도 하지만 관련된 비슷한 책들이 함께 검색되어 내 자료의 깊이를 한층 더 높여준다. 재미삼아 여러 검색어를 넣어 찾아보다가 마산부림서점이라는 헌책방이 마산지역 시인의 시집을 다량 보유하고 있고 서예가 정규 교과과목일 때의 교과서와 문교부 발행 서예학습지도안까지 구매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발로 걸어다니며 구매하는 헌책방에 비해 책보다 비싼 택배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헌책의 한 매력을 조금 떨어뜨렸고 그 값이 새책과 비슷할 경우에는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책의 내용이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채 결제하게 되어 어떤 책은 실패로 남았다. 한 번에 받으려고 목록을 모으다 검여선생의 책을 놓치기도 하였다.

 

<문교부 발행 초등학교서예학습지도안과 중고등학교 서예교과서>

 

 

 

 

 

 

 

 

 

 

 

- 볼레길과 자갈치시장 여행과 함께 할 보수동 책방골목

  오프라인서점이 꽤 많다고 느껴지는 부산의 헌책방골목이다.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책창고의 고고북통합검색을 통해 자주 재고가 확인되어 메모를 해 둔 터인데 이곳은 부평시장 자갈치시장 영도다리 안암공원 볼레길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여유로운 이틀 정도가 허락된다면 그 중에 하루를 이 책방골목에 묻혀보고 싶다.

대전 중앙시장을 갔다가 그 끄트머리쯤에도 많은 오프라인 헌책방 골목이 있음을 발견했다. 기차시간 여유가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곳 역시 여행삼아 들러볼 곳이다.

 

8. 사람이 있는 책이야기

  헌책 속에는 그 책을 만진 사람의 숨결이 있다. 오래 아껴온 마음이 있고 주고받은 이의 사랑이 있다. 표지를 한 장 젖히고 나면 때로는 저자의 서명이나 낙관이 있고 저명한 또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한 글씨가 남아 있다. 두 장을 넘기고 석 장을 넘기다 보면 열심히 찾고 공부한 메모와 깊이를 더해가는 해설이 있다. 간혹 오래되어 누렇고 활자가 작아서 빨리 읽고 싶은 내 마음과 속도가 맞지 않을 때 그것을 맞추어 줄 밑줄이 있다. 그 밑줄은 내가 관심없이 읽어갈 부분에 나를 멈추게 한다. 때로는 나와 다른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좋다고 하는 부분과 내 앞의 책주인이 좋다고 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기도 함을 느끼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삶을 조금씩 이해해간다. 오랜 책을 오래 전 그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추억과 함께 읽어간다.

  지금은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절대 발간하지 않았을 책들이 오래전에는 아주 많이 공급되어 졌음에 이 헌책방이라는 존재에 감사한다. 오랫동안 출판되어 온 수많은 책들 중에 헌책방 주인들의 안목으로 끊임없이 수요가 있는 책들이 분야별로 모여있다. 그래서 책 내용이 어느것 하나 버릴 부분이 없다. 귀하게 출판되었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새 책이 재고도서로 유입되어 헌책방에 있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보았겠지만 책에 대한 그들의 살아있는 정신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것저것 관심많은 내 삶에 선생님이 되고 친구가 된다. 서예와 인문학과 예술이 주요 분야이지만 택견이 궁금하고 정밀묘사가 궁금하고 팝송의 가사내용이 알고 싶거나 엄마가 혼자 한탄하듯 흥얼거리시는 옛날노래 가사의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싶을 때 헌책방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를 사람답게 살라고 이끌어준다.

 

<메모와 선물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표지, 해설이 붙어있는 책>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97.2..... 

 이 책을 받게 되는 you에게 기막힌 행운이 찾아올거예요.  

 행복하세요!"

 

 

후기* 2014년 서울북페스티벌 헌책방활성화 공모전

서울시장상을 받기는 했는데 과정이 이상했다.

헌책방 사장님 말로는 만장일치로 이 글이 독보적인 1등 점수를 얻었는데,

어떤 글이 현장투표로 이글을 넘겨 1등으로 뒤집히며 당선되었다.

도서관 내부에 비치되었다고 하는 그 투표판은 아침 8시부터 아무도 그 현장 투표용 스티커판을 보지 못하였다.

오랜 후에 그 1등을 위한 공모전의 개최가 아니었나 한다. 몇년전 모든 자료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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