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나온 법첩이름으로는 낭사대각석이라고 쓴 것이 많다.
邪(사)와 耶(야)를 혼용하여 쓴 경우와
후에 부수를 추가로 붙여가며 耶에 의미분화의 과정을 거친 琊를
혼용하여 쓴 경우로 판단된다.
지역이름으로 '낭야'가 현존하여 지금은 거의 '낭야대각석'으로
법첩이름이 변경되어 있다.
서법급기교학연구 책에는
깨지고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부서진 데다
뒤늦게 아주 귀하게 발견되는 탁본마저 없어서
겨우 10여줄에 불과하다 되어있다.
몇 글자 되지 않지만 필획의 섬세함과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그 어느 전서에서도 발견못했을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내 필획으로 따라 할 수가 없다.
진시황이 문자통일을 한 직후 순회하며 새겨진 글씨라면
전서로 '흰 백'을 저렇게 처리하면 안되지만 눈을 부비고 아무리
세밀히 보아도 다른 전서같은 흰 백을 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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