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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선생 한글갈 머리말

雅嵐 2023. 3. 22. 15:50

최현배 지은 한 글 갈 (正音學)

경성 정음사, 1940. (국립중앙도서관 DB)

 

머 리 말

 

한글(正音)은 조선사람의 知的 産物 中 가장 重要한 것인 同時, 知的 探究의 가장 緊切對象이 아니면 안된다. 내가 한글 硏究에 뜻한 지 이제 꼭 三十 周年이라, 이것저것에 관한 斷片的 所見이 일찍부터 없지 아니하였으나, 已往에는 우리말본의 지음과 가르치기의 바쁨으로 말미암아, 손이 이에 미치지 못하였더니, 이지음(*이즈음) 數年 동안에 閑暇한 몸이 되매, 時間을 오로지 訓民正音硏究에 바침을 얻어, 부즈런히(*부지런히) 갈고 닦은 成果를 뭉뚱그려, 이에 世上에 내어 놓게 된 것이다.

 

이 책은 訓民正音一切歷史的 問題와 한글에 一切理論的 問題를 크고작고 網羅(망라)하여, 이를 體系的으로 論究하여, 그 숨은 것을 들어내며, 그 어두운 것을 밝히며, 그 어지러운 것을 간추리어, 整然體系의 한글갈(正音學)을 세워, 우로는 申景濬(신경준), 柳僖(유희)遺業을 잇고, 아래론 周時經(주시경) 스승의 가르침의 遺志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한(*) 나의 學問의 뜻인즉 크지마는, 공부의 힘인즉 작은지라, 許多問題攻究에 있어서, 見聞疏漏論斷誤謬(오류)가 응당 적지 아니할 것이니, 그것은 나의 이 뒤의 繼續的 硏究斯學(*사학:이 학문분야) 大家協力的 敎示로 말미암아, 하로(*하루)라도 빨리 깁고 바로잡을 날이 오기를 정성껏 기다리는 바이다.

                                                                           昭和 十五 年(1940) 庚辰 冬至

                                                                                 杏村齋(행촌재) 東窓 앞에서

                                                                                                            지은이 적음

 

 

 

고친 한  글  갈

고친 판의 머리말

 

이 책은, 중일 전쟁이 점점 격렬해 갈 무렵에, 내가 폭탄이 서울에 떨어지기 전에, 이 몸이 전화로 죽기 전에, 그 날 그 대까지의 우리 한글 동지들의 연구한 결과를 적어서 뒷 세상에 전하여야 하겠다는, 나의 문화 육성의 정성과 겨레사랑의 의무심에서, 삼 년 동안에 밤낮 전심전력을 다하여, 이뤄낸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이른바 흥업 구락부 사건으로, 한여름 석 달 동안이나, 왜정 경찰의 악독한 고문을 당하고, 일터까지 쫓겨 나온 터이라. 오늘날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극히 불리한 형편에서, 외롭고 초조한 마음으로, 이 지음을 서둘렀기 때문에, 연구의 시일과 방법, 다라서 그 결과에 많은 모자람이 있을 것은 스스로 각오했던 바로서, 다만 다행히 이 길의 대가의 바로잡아 줌과 나의 글운수(文運)의 장구함을 얻어, 다시 이 책 수정의 기회가 있기를 은근히 바랄 뿐이었다.

 

한글 발전에 찬조의 특지를 가진, 나의 존경하는 친구 공 진항 님의 남모른 고마운 원조로써, 이 책의 간행을 끝내고 난 지 겨우 두어 달 만인 1942년 시월 초하룻날 새벽에, 뜻밖에도 나는 왜정 경찰에 검거되어, 쇠사슬을 차고 흥원까지 끌혀가아, 다른 한글 동지들과 같이 감옥살이의 신고를 겪기 찬 삼년에 이르렀다. 영하 이십 오 도의 독감방에서, 동고하는 이웃방의 동지의 죽어 나갔음을 기미채였을 적에, 옥중에서 어는 날 새벽에 빨가벗은 몸뚱어리로써 겨눠진 총 끝에 서게 되었을 적에, 이 책 수정의 기원은 남가-일몽으로 사라지고 말 번하였다. 그러나, 나는 공포와 실망은 품어 본 적이 없었다. 포악 무도의 세력이 종말이 오고야 말 것을 믿고, 다만 한결같이 건강 유지에 유의하고, 글읽고 생각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다가, 드디어, 1945년의 8.15 해방으로 인하여, 목숨을 지니고 옥문을 나옴을 얻었다.

 

해방 뒤 자유의 몸이 되어서는, 우리말 우리글의 부흥에 심력을 기울이고, 한자 폐지, 한글 전용의 세론을 이끌고, 자유민 교육 재건의 기초 사업으로 국민 교과서 편찬에 정력을 다하여, 한배나라 되세움에 이바지하기에 바쁜 세월을 보내기 찬 삼 년이었고, 또 뜻밖에 6.25 사변으로 겨레스런 큰 참화를 당하고는 전연 없어져 버린 교과서를 다시 편찬하는 책임을 맡아 또 다시 한 삼 년의 바쁜 날을 보내었다.

 

해와 달은 쉬지 않고 돌아, 해방으로부터 15, 이 책 초판으로부터 18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갔다. 모진 옥고와 어지러운 세파, 혹독한 전화에 부대끼었어도 오히려 죽지 아니하고, 이제. 일찍 우리 말본을 이뤄내던 연세대학교 옛 일터에서 옛 일을 다시 보면서 이 고친 판을 내게 되니, 우리말과 우리글의 쌍기둥을 깎아세우는 나의 평생 사업은 이에 낙성을 고하는 것인가 싶어, 무량한 감개를 안고, 나에게 이렇듯 두터운 글복(文祺)을 허여하신 하느님께 감사함을 마지 못하겠도다.

 

이번의 고친 판에서는, 바닥글(地文)은 순 한글로 하고, 체재는 가로줄로 짜서, 겉꼴을 일신하였으며, 그 속살에 있어서도 여러 문제에 아주 고침이 적지 아니하여, 또한 가히 일신되었다 할 만하다. 그렇지마는, 어찌 감히 한글의 진리를 남김없이 다 들어내었다 할 수 있으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겨레의 문화, 나라의 학문은 이 책이 뒷사람으로 말미암아 크게 고쳐 질 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초판 때에, 일제의 압박으로, 한 마디도 토로하지 못했던 나의 충정을 아울러 적고 붓을 놓는다.

 

 

4293(1960)515일 세종 대왕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노고 산방에서

지  은  이   적 음

 

*올리고 보니 선생님의 기일이다.

 일제치하의 고통이 아프게 깊이 느껴진다. 특히 중일전쟁 막바지의 그 광기스런 횡포...

  우리 부모세대는 그무렵 태어나자마자부터 국민학교 들어가자마자 부터 고통인 줄도 모르게 당하셨다. 일본말로 안하면 귀를잡아 흔들어 마룻바닥에 팽개치고 나동그라지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리는 일을 어린 국민학생들이 날마다 당했다.

요즘들어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른들이 학교를 안보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에서 기리는 전시가 열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24_zixRv7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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