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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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첫머리에서

雅嵐 2024. 2. 14. 13:23

돌아오는 여학생모임에서 읽을 책이다.

부활, 똘스또이 작,이 철 역, 삼성출판사, 1991.

 

몇십 만이나 되는 인간이

어느 조그마한 지구 한구석에 모여

힘겹게 자기네 땅을 

보기 흉하게 만들려고 제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또 땅바닥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도록

제아무리 돌을 깔아보아도,

그 틈바구니에서 싹터나오는 풀을

말끔하게 뽑아보아도,

석탄이나 석유의 연기로 아무리 그을려보아도,

또 아무리 나뭇가지를 자르고

새나 짐승을 죄다 쫓아보아도

ㅡ 봄은 도회지 안에서일지라도

역시 봄인 것이다.

햇볕이 따사로이 비치자

풀은 소생하여

송두리째 뽑히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지,

가로수 길 잔디밭이나 길의 협로는 말할 것도 없고

보도의 포석 틈에서까지 파릇파릇 싹이 돋아 나와서 

도처가 푸르렀다.

자작나무며 포플라와 야생벚나무에서도

향기롭고 끈적끈적한 새잎이 트고,

보리수는 이제 막 부풀은 새싹을 활짝 터뜨리고 있었다.

까치와 참새와 비둘기들은

자못 즐거운 듯 봄맞이준비로

벌써부터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파리들도

따뜻한 햇볕을 받아 다스해진 바람벽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이처럼 식물도, 새들도, 곤충도, 아이들까지도

모두가 제각기 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사람만은 ㅡ 성인 남자와 여자 ㅡ 

여전히 자기 자신을,

또는 서로 남을 속이거나 괴롭히기만 했다.

인간들에게 신성하고도 중요한 것은

이 봄날의 아침도 아니고

만물의 행복을 위해서 주어진

신의 세계의 이 아름다움 ㅡ 평화와 조화와 사랑에로

마음을 기울이는 아름다움도 아니었다.

오직 그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일들만이 신성하고도 중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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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에서

한동훈이 번쩍 치켜들고

차에도 애지중지 안고탄 생닭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나의 생각...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봄은 온다.

 

포도나무를 잘라주었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 하니 조금 늦으면 

자른 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예전보다 시기가 급속도로 빨라진다.

대파도 단도리해서 씻어두었다.

하룻저녁 수분을 말린 뒤 어슷썰어 냉동시켜 두려 한다.

쫑이 하나 나오기 시작했고 잎에 벌레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당 화분에 덮은 보온재를 모두 거두고 청소를 했다.

추위에 쩍 갈라진 화분도 있다.

10년 쯤 키운 그 나무가 살지 모르겠다.

아직 덜마른 낙엽은 걷어치우지 못했다.

낙엽도 이제는 가루같은 벌레가 있어서 땅에 거름으로 묻을 수가 없다.

한차례 더 치워 나가야할 것 같다.

 

땅만보며 폐지를 찾느라 하늘을 볼 수 없으니

우리집에 다녀가시라는 메모를 보고도 어딘지 몰랐다고 하셨다.

명절전에 이틀이나 종일을 길에서 기다려 폐지할머니를 잡아 거지반을 치우고

금일봉을 드렸더니

잊지 않고 책과 헌옷과 A4용지 양면을 다채워쓴 폐지를 리어카에 실으러

벨을 눌러주셨다. 날이 어둑어둑 저문 때에야 시간이 난다.

폐지를 모아두면 가져가던 친구, 어머니와 아들...그리고 리어카...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그리운 친구,

요양원에 간 어머니와 복지센터에서 일을 소개받아 나가는 아들은 

그래서 폐지를 그만두었다.

자전거로 당근에 팔 물건을 뒤적이며 지나가거나,

내가 모아 배출일과 시간에 맞춰 내놓은 재활용봉지를 길에 모두 쏟아놓고

알미늄캔만 챙겨가는 배낭메신 분들,

작은 손수레에 택배박스만 차곡차곡 실어나르는 분들만 있다.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해왔다.

아침 먹은 것이 아직 소화되지 않아 애매한 저녁만 먹고 싶었는데

밥 하나를 사양하자는 나의 권고는 흘려버리고 본인 밥은 남기고

많은 반찬을 내게 얹어준다. 그래서 그말을 듣고도 오늘의 식사량은 실패다.

더구나 내내 유니**이야기만 내 정수리 위로 쏟아내는 바람에 더 소화가 되지 않는다.

식사 전에 그 친구는 믹스해서 마시는 것이 많고 많은 것을 들고 다닌다.

정기적으로 "지나가다 들렀어." 할 것 같은데,

몇년째 만날 때마다 일방적인 정보전달 대화는 시간이 부족한 내게 조바심을 낸다.

"넌, 바보야. 이런 걸 모르고." 그렇게 대화??? 하는 것 같다.

그쪽 내가 아는 누구도 고혈압 당뇨라는데

자기가 먹으라는 식품을 안먹고 화학약만 먹는다고 만날때마다 불만을 뗀다.

나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한 채 화학약을 끊고 그렇게 대체식품을 고집하다가

병원에 천정만 보고 끔벅거리는 사람을 많이 봤다.

 

보자마자 첫말을 그렇게 뗀 이유가 있고,

그러고보니 요즘 몇년은 볼 때마다 그랬다.

옆자리에 아주 오랜만에 본다는 세 친구도 나중 나타난 친구에게 

큰소리로 첫마디를 뗀다. "너 왜이렇게 살쪘어!!!" 

순간 우리도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내눈으로는 보통 체형이다.

오늘 따져보니 날짜까지 꼭 50년 된 친구다.

친구의 재능이 아깝고 안타깝다.

난 나대로 엉뚱한 생각을 하며 흘려듣는다.

평균수명 남은 30년까지 저것으로 살 수 있을까?

오늘 내 모습으로 난 큰 걸 하나 깨달았다.

내가 말할 때 내 말이 상대방 정수리 위로 날아가고 있으면

내가 대화가 아닌 정보전달을 하고 있는 게다.

이 바보야. 넌 이걸 모르지. 하며.

 

내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 '부활'도 읽어야 한다.

난 내가 주어진대로 변화하는 그대로 살고 싶다. 자연스럽게.

 

논산어머니가 주신

토종 칸나 세 주를 울밑에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