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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포도의 모든 것 - 비가 온다기에

雅嵐 2024. 9. 13. 10:09

포도를 키우는 일은 고도의 노동집약산업이다.

내 능력으로는 딱 한 그루밖에는 잘 관리하지 못하겠다.

 

오래전

직장이 끝난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집앞 독서실로 향했다.

직장 끝나고 간 어두컴컴한 독서실은,

배불리 저녁까지 먹고 가게 되면

엎드려자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초코파이 하나와

당시에 델몬트오렌지에 이어 처음 출시된 100% 포도주스가 나의 에너지였다.

반쯤 감겨가는 눈으로 보는둥마는둥 머릿속에 드는둥마는둥이

투명하게 맑아졌었다.

 

창밖으로

말벌과 새들이 포도알을 쏘옥쏙 뽑아먹는 것을

날이 너무 무섭도록 뜨거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비가 올 것이란다.

다 익은 포도가 비를 맞고 또 땅의 많은 수분을 흡수하게 되면 알이 터지게 된다.

묵은 나무 남은 한 줄기에서 작은 가지 하나가 살아 많은 열매를 맺었다.

 

심사위원께서

내게 냉정함의 단어와 문장을 권고하셨다.

아마도 동지가 꼭 지나야 하나보다. 그래야 10년이다.

비로소 그 단어들에서 나의 상처가 보인다.

그 단어들이 아니라도 내 글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10년간 책상 앞에서의 씨름이 체형도 망가뜨렸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며 칩거한다.

마른 눈물이 다시 고인다. 10년간 내가 많이 아팠었나보다.

밑줄 쳐주신 단어를 감사히 여기며 삭제하고 다시 쓴다. 긍정적으로.

심사위원의 호된 질책에서 오히려 그 단어를 지우며 마음이 치유가 되고 녹아내린다.

둘레길 언니가 친구 이야기를 몇 번 했었는데 이번엔 달라졌다.

내가 그 친구랑 겪은 일은 같은데 차이라면,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란다.

아마도 그분은 문화원을 통째로 빼앗긴 것 같다.

 

빗방울이 떨어지다 지나가고

날이 어둑해질무렵 포도알도 잘 보이지 않지만 땄다.

한 그루가 내 노동력의 한계이다. 고도의 노동집약산업.

 

 

다음으로 잘난 포도알들만 남기는 작업. 고른다.

비가 한 번 지나가서인지 더 깨끗하다.

우선 몇 송이 씻어 노르스름하게 투명해진 청포도를 뜯어먹는다.

화장실에 애먹는 나는 아니지만

포도를 많이 먹는 날은 화장실이 더욱더 매끄럽고 색도 좋다.

방구에서 포도향이 난다.

 

낱알을 솎지 않았더니 알 크기는 둘째치고라도 

자기들끼리 자랄 자리가 없어 터지며 뭉개지고 그 안에 거미도 집을 짓고 새끼를 치고 자리를 잡는다.

내년에는 낱알 솎기에도 도전해보아야 하나. 그냥 아무렇게나 자라지.

 

먹다 지치면

알을 따서 끓이기로 한다.

 

새로운 방법에 도전하니 따라해서 일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끓인 적은 없었는데 끓여서 쥬스를 내란다.

남은 거에 누룩과 고두밥을 함께 버무려 담으란다. 누룩을 쓸 일이 없으니 효모가 살아있다는 막걸리를 부어볼까 사왔다. 일년 농사를 망칠 작정인지도 모른다.

포도로 그냥 먹고 있으려니 시간이 너무 아깝고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씨가 크고 많다.

아쉽지만 

알을 따서 남은 모두를 으깬다.

 

체에 받쳐 어느정도 쥬스를 받아냈는데도

건더기에서 술이 차오른다. 포도막걸리가 되려나.

포도쥬스는 환상의 맛이다.

목표는

포도주가 되었다가 초산층이 생기면서 발사믹식초가 되는 것이다.

 

수고한 포도나무에게

안먹는 즙 몇 개를 까서 부어주고

조금 덜 뜨거운 날씨가 되고 포도잎이 조금씩 누래지면

산뜻하게 이발을 해 줄 작정이다.

 

오늘도 역시 콩쥐가 되었다.

 

https://v.daum.net/v/2024092121002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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