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으로 하나씩 넘겨진다.
세상에서 아까운 또 한 분이 계시지 않게 되었다.
전화로도 소통이 어렵게 되셨다.
생전에 더 한 번 뵙지 못함을 죄스러워 하며.....
도를 아느냐.
세상 모든 사물을 대하는 일이 도닦는 일 같다.
부추, 영양부추, 실파, 쪽파, 골파... 뭐 그쯤 될라나.
염교는 발음이 락교와 비슷하다. 광동지방 초절이 파뿌리라고 나온다..
지금은 일식에서 더 잘 만난다.
가지런히 하는 계절인가보다.
공을 쌓아야 하는 일이 이어진다.
읽지 않은 분의 호된 모욕을 고개를 숙이고 오래오래 들어야만 했다.
10년 전 첫 검토를 부탁했던 그 논문 이야기만 거듭거듭 같은 단어와 문장으로 다그친다. 학교 망신??? 또 말려들어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올겨울 넘기기 전에 1년도 안되어 모두 내것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새로운 공격을 한다.
난 충분한 대비를 너무도 많이 해두었다.
도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말씀을 기억하기로 한다.
냉정함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니....
[주-C001] 고문(古文) : 원문에는 없으나 앞뒤의 체재와 국역 대본인 《한국문집총간》의 총목차를 참고하여 보충하였다.[주-D001] 창힐(蒼頡)이 …… 만들었다 : 창힐은 황제(黃帝) 때의 사관(史官)이고, 전욱은 상고 시대 오제(五帝) 중 한 명이다. 과두문자는 글자가 올챙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과두(蝌蚪)’라고도 쓴다.
[주-D002] 주(周)나라 …… 15편 : 매씨와 백씨는 주나라 사관이고, 사주는 주 선왕(周宣王)의 태사로 대전의 시조이다. 분서는 남녀가 혼인할 때 신표로 오가던 문서의 서체로 전서(塡書)라고도 하는데 글자 사이가 빽빽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종정문은 쇠로 종이나 솥을 주조할 때 새겨 넣은 서체이고, 수서는 문관의 홀과 무관의 창에 새긴 서체이다. ‘《대전(大篆)》 15편’은 원문에는 ‘십이편(十二篇)’으로 되어 있는데 《묵수(墨藪)》, 《묵지편(墨池編)》, 《서원청화(書菀菁華)》 등에 ‘대전십오편(大篆十五篇)’으로 나와 있어 이를 따랐다.
[주-D003] 가화서(嘉禾書) : 양두산(羊頭山)에 하나의 줄기에서 여덟 싹이 난 벼가 있었는데 염제가 기이하게 여겨 만든 서체로, ‘수서(穗書)’라고도 한다.
[주-D004] 수서(穗書) : 가화서(嘉禾書)를 가리킨다. 양두산(羊頭山)에 하나의 줄기에서 여덟 싹이 난 벼가 있었는데 염제가 기이하게 여겨 만든 서체이다.
[주-D005] 무광(務光)이 해서(薤書)를 만들었으며 : 무광은 은나라 탕왕 때의 선인(仙人)으로 탕의 선양(禪讓)을 피해 은둔하면서 염교를 심어 먹었던 사람이다. 해서는 무광이 불어오는 바람에 잎이 엇갈려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만든 서체로, 흔히 ‘도해서(倒薤書)’라고 한다
.[주-D006] 팔체(八體) : 여덟 가지 서체로, 대전(大篆), 소전(小篆), 각부(刻符), 충서(蟲書), 모인(摹印), 서서(署書), 수서(殳書), 예서(隷書)이다.
밤 아홉시에 쪽파 촘촘히 세운 한 박스가 마당에 당도했다.
내일이면 모레가 되고 일은 두 배로 늘어난다. 다듬어 그냥 놔두면 파의 끈끈함과 흙이 말라붙어 더 씻어야 한다. 씻어 건져 놓으니 새벽 5시다.
굵은 파뿌리는 칼집을 내고, 중간중간 액젓을 뿌려 둔다. 간 맞추는 정도라야겠지?
저 액젓과 파물이 차오른 물에 밀가루를 풀어 풀을 조금 된듯이 쑤어 식혀둔다.
새우젓 건더기만, 설탕, 신화당, 보라색 양파 아주 조금 곱게 채썰어 넣었다. 집에 있는 재료라서.
파도 양념이므로 마늘과 생강은 넣지 않았다.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넣는다.
** 주의!!! 양념이 모자랄 것을 대비하여 파를 작은 한 단 정도 남겼다. 항상 모자란다. 이상도 하지.
그래서 남은 파 쭈욱 늘어놓고 훌훌하게 밀가루반죽물 얹고 오징어 곱게 썬 것과 달걀 하나 탁 깨뜨려 얹어 파전을 했다. 엄마생각이 나서 한밤중에 갖다 드렸다. 식후이심에도 김이 모락모락하니 맛나다고 잘 드신다. 오늘 잘 살아냈다.
남은 파 뭉치는 투움바 파스타를 만들 예정이다. 우유만 두 통 사두면 될 것 같다.
영녕전(永寧殿)에서 춘향(春享)을 섭행(攝行)하였다. 그 의주(儀注)에 이르기를,
“재계(齋戒)에 관한 의절.
제향을 7일 앞두고
행사 집사관(行事執事官)들은 봉상시(奉常寺)에서 서계(誓戒)를 받는다.
당일에 날이 밝기 전 7각(刻)에 통례문(通禮門)이 자리를 설치하는데,
헌관(獻官)의 자리는 북쪽에 설치하되 남향으로 하고,
천조관(薦俎官)의 자리는 남쪽에 설치하되 북향으로 하며,
감찰(監察)의 자리는 서쪽에 두되 동향으로 설치하고,
집례(執禮)ㆍ전사관(典祀官)ㆍ대축(大祝)ㆍ축사(祝史)ㆍ재랑(齋郞)ㆍ협률랑(協律郞)ㆍ전사(殿司)ㆍ궁위령(宮闈令)ㆍ장생령(掌牲令)ㆍ아악 령(雅樂令)ㆍ봉조관(捧俎官)ㆍ알자(謁者)ㆍ찬자(贊者)ㆍ찬인(贊引)의 자리는 동쪽에 두되 서향으로 설치하며,
등(等)마다 위차를 달리 하여 겹줄로 모두 북쪽이 위가 되게 한다.
밝기 전 5각에 봉례랑(奉禮郞)이 행사한 집사관들을 각각 나누어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간 뒤에
헌관을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가면,
통찬(通贊)이 헌관의 왼쪽에 나아가 서향하고 서서, 서문(誓文)을 대독(代讀)하기를,
‘금년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영녕전에 제향을 드리니,
무릇 행사할 집사관은 술을 함부로 마시지 말 것이며,
파[葱]와 부추[韭]와 마늘[蒜] 염교[薤]를 먹지 말 것이며,
조상(弔喪)하거나 문병[問疾]하지 말 것이며,
음악을 듣지 말며, 형벌을 행하지 말며,
형살(刑殺)하는 문서를 판결 서명하지 말며,
예악(穢惡)한 일에 간여하지 말고 각각 그 직무를 거행하라.
혹시 이에 어김이 있으면 국가에서 일정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읽기를 마치고 나서, 통찬이 ‘재배(再拜)하라.’ 찬하면,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무릇 행사 집사관은 산재(散齋)의 4일간을 모두 정침(正寢)에서 자고, 3일 간의 치재(致齋)를 2일은 본사(本司)에서 행사고, 1일은 향소(享所)에서 행한다.
대저 산재 중에는 사무를 다스리기를 평상시와 같이 하나,
치재 중에는 오직 향사에 관한 일만을 행하며,
이미 재계하고 궐(闕)하게 된 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통하여 섭행하게 한다.
모든 위(衛)의 속원(屬員)과 전문(殿門)을 수위(守衛)하는 자는 【대장(隊長)은 문마다 각각 2인, 모퉁이마다 각각 1인으로 한다.】 각기 본사(本司)에서 재계하고 하룻밤을 자며,
공인(工人)과 이무(二舞)는 재계하고 예조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치재하기 하루 전에 모두 봉상시에 모여서 의식의 절차를 익히고, 행사하기 하루 전에 모두 향소(享所)에 집합한다. 【무릇 제향에 참여할 자는 향사를 이틀 앞두고 모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다니는 길을 청소하여 모든 흉하고 추악한 것과 최질(衰絰) 등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그 곡읍(哭泣)하는 소리가 향소에 들리는 것은 임시 금지하도록 한다.】
진설(陳設)에 관한 의절.
향사를 앞두고
충호위(忠扈衛)에서는 모든 향관의 자리를 재방(齋坊)안에 설치하면,
전사(殿司)가 그 속원을 거느리고 신전(神殿)의 안팎을 소제하고, 찬만(饌幔)을 동쪽 문밖에 설치하되, 지형에 따라서 적당한 곳을 택하여 한다.
하루를 앞두고서 아악 령(雅樂令)은 그 속원을 거느리고 등가(登歌)의 악기(樂器)를 마루 위의 앞 기둥 사이에 설치하고, 헌가(軒架)는 신전 뜰에 설치하되, 모두 북향으로 마련한다.
장생령(掌牲令)은 희생(犧牲)을 끌고 향소로 나아가면,
전사관과 전사는 각기 그 소속을 거느리고 제기(祭器)를 받들어 둘 자리를 마루 위의 동편 계폐(階陛) 북쪽에 설치하고, 【무릇 제기를 설치함에 있어서는 모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수건을 덮어 둔다.】 〈그 희생과 제기가〉 깨끗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보고를 기다린다.
집례(執禮)는 헌관(獻官)의 자리를 조계(阼階)의 동남쪽에 설치하되 서향으로 하고, 천조관(薦俎官)의 자리를 헌관의 뒤에 약간 남쪽으로 설치하되 역시 서향으로 하며, 집사자(執事者)는 그 뒤에 자리하게 하는데, 등마다 위차(位次)를 달리 하고 모두 겹줄로 하되, 서향하며 북쪽을 위가 되게 한다.
감찰(監察)의 자리는 신전 뜰 남쪽에 동편으로 가깝게 설치하되 서향으로 하며, 서리(書吏)가 그 뒤에 배석(陪席)하게 된다.
집례의 자리는 마루 위의 앞기둥 밖에 동편으로 가깝게 설치하되 서향으로 하고,
알자ㆍ찬자ㆍ찬인의 자리는 조계(阼階)의 서남쪽에 설치하되, 서향으로 하여 북쪽을 위로 한다.
협률랑(協律郞)의 자리는 마루 위의 앞기둥 밖에 서편으로 가깝게 설치하되 동향으로 하고,
아악 령(雅樂令)의 자리는 헌현(軒懸) 북쪽에 설치하되 북향으로 하고,
헌관의 음복위(飮福位)는 마루 위의 앞기둥 자리에 동편으로 가깝게 설치하되 서향으로 하고,
또 문밖에 향관 및 여러 집사의 자리를 동편 문밖의 길남쪽에다 설치하되, 등마다 위차를 달리 하고 모두 겹줄로 북향하여 마련하며, 서쪽을 위로 한다.
생방(牲牓)의 자리는 동문 밖에 문을 마주 보고 서향하여 설치하되, 남쪽을 위로 한다.
장생령(掌牲令)의 자리는 희생의 서남쪽에 설치하고, 대축(大祝)의 자리는 희생의 동쪽에 설치하되, 〈모두〉 희생의 뒤로 하며, 축사(祝史)도 그 뒤에 있게 하되, 모두 서향하게 한다.
천조관의 희생을 살피는 자리는 희생의 앞에 설치하되, 북쪽으로 가깝게 하고, 감찰의 자리는 천조관의 서쪽으로 하고, 모두 남향하여 마련한다. 【감찰의 자리는 약간 뒤로 물린다.】 〈축판(祝版)과 폐백을〉 묻을 구덩이는 신전의 북쪽 임지(壬地)에 네모지게 파되, 깊이는 족히 물건을 용납할 정도로 하고, 남쪽 계폐(階陛)로 나오게 한다.
망예위(望瘞位)는 구덩이의 남쪽에 설치하되, 현관은 남쪽에 자리하여 북향하게 하고, 집례와 대축과 찬자는 동쪽에 자리하여 모두 겹줄로 서서 서향하게 하며, 북쪽을 위로 한다.
제향하는 날에, 행사하기에 앞서 궁위령(宮闈令)이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신실(神室)의 문을 열고 신악(神幄)을 정돈하고 털고 닦은 뒤에 자리를 펴고 젯상[几]을 설치하기를 평상시의 의절과 같이 한다.
전사관과 전사(殿司)가 각기 그의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들어와서 신위(神位)의 오른편에 축판을 드리고, 【점(坫)이 있다.】 폐백 상자를 준소(尊所)에 진열하고는, 향로(香爐)와 향합(香合)을 초와 함께 신위(神位)앞에 배설해 놓는다.
다음에 제기(祭器)와 실찬구(實饌具)를 설치하는데,
변(籩) 12개는 왼편에 배설하되, 두 줄로 하고 오른쪽을 위로 한다. 【첫 줄에는 형염(刑鹽)을 머리에 두고, 건어(乾魚)ㆍ건조(乾棗)ㆍ율황(栗黃)ㆍ진자(榛子)ㆍ능인(菱仁)을 그 다음에다 배설하며, 둘째 줄에는 능인을 앞에 두고, 녹포(鹿脯)ㆍ백병(白餠)ㆍ흑병(黑餠)ㆍ구이(糗餌)ㆍ분자(粉餈)를 그 다음에다 배설한다.】
두(豆) 12개는 오른편에 배설하되, 두 줄로 하고 왼쪽을 위로 삼는다. 【첫 줄에는 구저(韭菹)를 앞에 두고 담해(醓醢)·청저(菁菹)ㆍ녹해(鹿醢)ㆍ근저(芹菹)ㆍ토해(兎醢)를 그 다음에 배설하며, 둘째 줄에는 순저(筍菹)를 앞에 놓고 어해(魚醢)ㆍ비절(脾折)ㆍ돈박(豚拍)ㆍ타식(駝食)ㆍ삼식(糝食)을 그 다음에 차례로 배설한다.】
조(俎)는 셋을 마련하되, 둘은 변(籩) 앞에 놓고, 하나는 두(豆) 앞에 놓는다. 【변 앞에 놓는 조는, 하나는 우성(牛腥)을 담고, 하나는 양성(羊腥)의 칠체(七體)를 담는데, 양쪽 허파와 양쪽 어깨와 양쪽 갈비에다가 등심을 아울러 쓰되, 허파는 양쪽 끝에 놓고, 어깨와 갈비는 그 다음에 놓고, 등심은 한가운데 놓는다.
두 앞에 놓는 조에는 시성(豕腥)의 칠체를 담는데, 그 배치하는 순위는 양성과 같이 한다.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무릇 앞에 놓는다는 것은 모두 남쪽을 이르는 것이다’고 하였다.】
두의 오른쪽에도 조 셋을 배설한다. 【하나는 쇠고기로써 익힌 내장 위(胃)와 폐(肺)를 담고, 하나는 양고기로써 익힌 내장 위와 폐를 담고, 하나는 돼지고기로써 익힌 고기를 담는데, 돼지고기를 앞에 놓고, 쇠고기와 양고기는 그 다음에 놓는다. 대저 조에는 모두 희생을 덮는 갑(匣)이 있다.】
보[簠]와 궤[簋]는 각각 넷으로서, 변과 두의 사이에 배설하는데, 궤를 앞에 놓고, 보는 그 다음에 진설한다. 【보에는 도(稻)와 양(粱)으로 채우고, 궤에는 서(黍)와 직(稷)으로 채운다.】
등(鐙)과 형(鉶)이 각각 여섯으로서 보ㆍ궤 뒤에 진설하되, 형을 앞에 놓고, 등을 뒤에 놓는다. 【등에는 대갱(大羹)을 채우고, 형에는 화갱(和羹)을 채우고는 모활(芼滑)을 가한다.】
술잔 여섯 개를 보ㆍ궤 앞에 놓고, 【각기 점(坫)이 있다.】
또 술그릇[尊罍]을 지게문 밖 왼편에 설치해 놓고, 【종묘의 의적과 같다.】
모두 술국자를 넣거나 보자기를 덮어 두되, 북향으로 하여 서쪽을 위로 한다. 【대저 준뢰(尊罍)에는 명수(明水)와 현주(玄酒)로 채우는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삼으며, 신에게 제향하는 물건으로 당시에 없는 것은 그 계절에 생산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한다.】
찬반(瓚盤) 한 개를 준소의 점 위에 설치하고, 화로[爐]와 숯을 앞 기둥 사이에 설비해 놓고, 모혈반(毛血盤)과 간료등(肝膋鐙)과 소변(蕭籩)과 서직변(黍稷籩)을 각각 하나씩 그 뒤에 설치한다.
음복(飮福)하는 술잔 【점(坫)이 있다.】 과 조육조(胙肉俎) 각각 하나를 준소에 설비하고, 또 조 하나를, 찬수를 받들어 둔 장막 안에 설치해 둔다.
세(洗)는 조계의 동남쪽에 북향으로 설치한다. 【관세(盥洗)는 동쪽에 두고, 잔세(爵洗)는 서쪽에 두게 한다.】
뇌(雷)는 세의 동쪽에 설치하되, 국자를 올려놓고,
비(篚)는 세의 서남쪽에 설치하되, 수건을 넣어 둔다. 【만약 작을 씻는 비이면 또 찬(瓚)과 작(爵)을 넣어 둔다. 점(坫)이 있다.】
모든 집사의 관세하는 자리는 현관의 세위(洗位)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고,
준(尊)ㆍ뇌(罍)ㆍ비(篚)ㆍ멱(羃)을 맡을 집사자의 자리는 준ㆍ뇌ㆍ비ㆍ멱 뒤에 설치한다.
향축(香祝)을 받는 의절.
제향을 하루 앞두고,
주루(晝漏)의 상수(上水)가 1각이 되면,
유사(有司)가 향축안(香祝案)을 근정전(勤政殿) 중앙에 남향으로 하여 설치하고,
향안(香案)은 그 앞에 설치하며,
전하(殿下)의 배위(拜位)는 월대(月臺)의 중앙에 북향으로 하여 설치하고,
통례문의 전의(典儀)의 자리를 동계(東階)의 동쪽에 설치하고,
통찬 두 사람의 자리는 남쪽에 두되, 약간 뒤로 물려서 모두 서향하게 마련하고,
좌우의 시신(侍臣)의 자리는 동계ㆍ서계의 남쪽에 서로 상대하여 마련하되, 위차(位次)를 달리 하여 겹줄로 하며, 모두 북쪽을 위로 하여 설치한다.
노부(鹵簿)를 궐문 밖에 설비해 두고, 시신들이 각기 조복(朝服)을 갖추고 대기하고, 3각에 헌관 이하 행사할 집사관은 모두 궐문 밖에 집합한다.
전하가 관포(冠袍)를 갖추고 나오면, 교서관(校書館)의 관원이 축판(祝版)을 받들어 올리면, 근신(近臣)이 이를 전해 받아 받들어 올려, 전하가 서결(署決)을 마친 뒤에, 근신이 축판과 향을 향안(香案)위에 놓는다.
5각이 되면, 봉례랑(奉禮郞)이 좌우의 시신을 나누어 인도하고 들어가서 자리에 나아가고,
다음에 헌관 이하의 제관들을 인도하고 들어가 자리에 나아가는데, 봉례랑이 헌관을 인도하여 동계로 오르면, 【봉례랑은 계하(階下)에서 그치고 만다.】 판통례(判通禮)가 전하를 인도하고 배위(拜位)로 나아가서 북향하고 서서, 재배(再拜)하기를 계청하고 나서, 다시 전하를 인도하여 향안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기를 계청한다.
근시 한 사람이 향합을 받들고 서향하여 꿇어앉아 바치면, 근시 한 사람은 향로를 받들고 동향하여 꿇어앉아 바친다.
판통계가 세 번 향불 피워 올리기를 계청하면, 근시가 향로를 향안 위에 올리고, 또 근시가 향과 축문을 받들어 동향하여 꿇어앉아 올린다.
판통례가 향축을 받아 헌관에게 주기를 계청하면, 헌관이 서향하여 꿇어앉아 받아 가지고 일어나서 도로 향안 위에 놓는다.
판통례가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계청하고, 전하를 인도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서 재배를 계청한다.
다시 전하를 인도하여 물러가서 월대 위에 동향하여 선다.
헌관이 향과 축문을 받들고 정계(正階)로 내려가면, 판통례가 국궁(鞠躬)하기를 계청하고, 헌관이 계단을 다 내려간 뒤에, 전하가 몸을 편다.
헌관이 문밖에 나가서 향과 축문을 여담(舁擔)에 놓으면, 천조관 이하는 모두 헌관을 따라 차례로 문밖으로 나와서 말에 오르고, 군사(軍士)가 여담과 노부를 받들고 앞에서 인도하여 재방문(齋坊門) 밖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문으로 들어가 신전[殿] 동문 밖으로 나아가서, 겹줄로 북쪽을 위로 하여 서향하고 서서 네 번 절한 다음에, 각기 재소(齋所)로 나아가서 향과 축문을 탁자 위에 안치(安置)한다.
희생과 제기를 살피는 의절.
향사하기 전날
미시 후(未時後) 2각(刻)에, 전사(殿司)가 그 소속을 거느리고 신전의 안팎을 소제하고 나면, 집사자가 제기를 들여다가 각기 제자리에 벌여 놓고, 보자기로 덮기를 진설의 의절과 같이 한다.
미시 후 3각에 천조관 이하 응당 희생과 제기를 살펴볼 사람들이 모두 평복 차림으로 동문 밖으로 나아가면, 집례가 알자와 찬자를 거느리고 먼저 신전 뜰에 들어간다. 장생령(掌牲令)이 희생을 끌고 자리에 나아가면, 찬인(贊引)이 감찰을 인도하여 조계(阼階)로 올라가서 오르내리는 곳을 소제하고, 악현(樂懸)은 그 밑에 설행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알자는 천조관을 인도하고, 찬인은 감찰을 인도하여 조계로 올라가서 〈제기의〉 세척(洗滌)한 상황을 살펴본다. 집사자들이 모두 멱(羃)을 들고 정결히 되었다고 고(告)하고 나서, 다시 인도하고 내려와 희생을 살펴보는 성생위(省牲位)로 나아가 남향하여 선다. 장생령이 조금 앞으로 나서서 말하기를, ‘희생의 점검을 청합니다.’ 하고는 물러가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천조관이 희생을 살피며, 장생령이 또 앞으로 나서서 손을 들고 ‘돌(腯)’이라 〈살찐 희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대축(大祝)이 희생을 한 바퀴 〈돌며〉 순시하고 나서 서향하여 손을 들고, ‘충(充)’이라 〈충만함을〉 말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하여〉 대축과 장생령이 차례로 희생을 끌고 주방(廚房)으로 나아가서 이를 전사관(典祀官)에게 준다. 그러면, 알자는 천조관을 인도하고 주방으로 나아가, 정확(鼎鑊)이 정결히 세척되어 있는가를 거듭 살피고, 명수(明水)와 명화(明火)를 잘 취하였는가를 본다. 【물은 음감(陰鑑)에서 취하고, 불은 양수(陽遂)에서 취한다. 음감을 졸연히 판득할 수 없으면, 우물물로 이를 대신한다. 불은 〈제수를 장만하기 위하여〉 불땔 때에 쓰고, 물은 준(尊)을 채운다.】 찬인은 감찰을 인도하여 주방으로 나아가서 찬구(饌具)를 살피고 나서 각각 재소로 돌아간다. 포시(晡時) 【신시(申時).】 후 1각에, 전사관이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난도(鸞刀)로 희생을 벤다. 축사는 쟁반을 가지고 모혈(毛血)을 취하고, 또 간(肝)과 수료(脺膋)를 취하여 등(鐙)에 채워 각각 찬소(饌所)에 두게 되면, 드디어 희생을 삶는다. 【가죽째 그대로 삶는다. 간은 울창(鬱鬯)에 씻는다. 수료는 창자 사이에 끼어 있는 기름[脂]이다. 간과 요는 함께 한 등에 담고, 털과 피도 함께 한 쟁반에 담고서, 그 나머지의 털과 피는 정결한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제례를 마친 다음에 이를 묻는다.】 전사가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신전 안팎을 깨끗이 소제한다.
신관(晨祼)에 관한 의절.
제향 당일
축시(丑時) 전 5각에 【축시 전 5각은 즉 3경 3점(三更三點)이니, 행사하는 시각은 축시 전 1각이다.】 궁위령이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신실(神室)을 열고 신악(神幄)을 깨끗이 털고 나서 자리를 펴고 궤(几)를 설치하기를 보통 때의 의식과 같이 하고, 전하관과 전사는 각기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들어와 찬구를 채우고 나면, 찬인이 감찰을 인도하여 조계로 올라와서 【무릇 행사할 집사관은 모두 조계로 오르내린다.】 당(堂)의 상하를 순시하고 의절과 같게 하지 못한 것은 규찰하여 도로 내보낸다.
행사하기 전 3각에, 모든 향관이 각기 그 복색(服色)을 갖추고, 집례가 알자와 찬자와 찬인을 거느리고 동문으로부터 들어와 조계 사이의 현(縣) 북쪽의 배위(拜位)로 먼저 나아가서, 겹줄로 북향하고 서쪽을 위로 하여 네 번 절하고 나서 각각 자리로 나아간다. 또 아악 령이 공인(工人)과 이무(二舞)를 거느리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서, 문무(文舞)는 현 북쪽에 벌여 놓고, 무무(武舞)는 현 남쪽 길 서편에 세워 둔다. 그리고 나면, 알자와 찬인이 각각 향관을 이끌고 함께 동문 밖의 자리로 나아간다.
행사하기 전 1각에, 찬인이 감찰ㆍ전사관ㆍ대축ㆍ축사ㆍ재랑ㆍ전사ㆍ궁위령ㆍ협률랑ㆍ봉조관을 이끌고 들어와 현(懸)의 북쪽 배위(拜位)로 나아가서 겹줄로 북향하여 서쪽을 위로 하고 선다.
집례가 말하기를, ‘사배하라.’ 하면, 찬자가 〈이를 다시〉 전갈(傳喝)하여, 【무릇 집례가 말을 하면, 찬자가 모두 전갈한다.】 감찰 이하가 모두 네 번 절하고 나면, 찬인이 감찰을 이끌고 자리에 나아간다.
또 찬인은 여러 집사들을 이끌고 관세위(盥洗位)에 나아가 씻고 닦기를 마치고 나서 각각 자리에 나아가면, 찬인이 전사ㆍ대축ㆍ궁위령을 이끌고 들어와서, 감실(埳室)을 열고 신주(神主)를 받들어 내어 신좌(神座)에 설치하고, 【신악 안에 나아가 상[几]뒤에 궤(匱)를 열고 신좌에 설치한다.
선왕(先王)의 신주는 대축이 받들어 내어 백저포(白苧布)로 덮어 놓고, 선후(先后)의 신주는 궁위령이 받들어 내어 청저포(靑苧布)로 덮어 놓는데 서쪽을 위로 한다.】 다시 이끌고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면, 찬인이 다시 재랑을 이끌고 작세위(爵洗位)에 나아가서 찬(瓚)을 씻고 닦는다. 또 작(爵)을 씻고 닦기를 마치면 비(篚)에 담아 받들고 태계(泰階)로 나아가고, 축사가 계상(階上)에서 이를 맞아 준소(尊所)의 점 위에 놓는다.
그리고 나며, 알자는 헌관을 이끌고, 찬인은 천조관을 이끌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간다.
집례가 ‘사배하라.’고 말하면,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네 번 절한다. 【먼저 절한 자는 절하지 아니한다.】
알자가 헌관의 왼쪽으로 나가서 고하기를, ‘유사가 삼가 〈예를〉 갖추었으니 행사(行事)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법률랑이 끓어 앉아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휘(麾)를 들고 일어나면, 【무릇 물건을 취하는 자는 모두 꿇어앉아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취하고 일어나며, 물건을 드릴 때에는 꿇어앉아 드린 뒤에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악공(樂工)이 축(祝)을 치고, 헌가(軒架)에서 경안(景安)의 악(樂)과 열문(烈文)의 춤이 시작된다.
구성(九成)을 마치면 협률령이 휘를 줍히고, 어(敔)를 쳐서, 악이 그친다. 【무릇 악은 모두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하였다가 휘기를 들고 일어나면, 악공이 축을 친 뒤에 시작하고 휘기를 눕히며 어를 치면 그친다.】
집례가 말하기를, ‘신관례(晨祼禮)를 행하라.’ 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면, 찬하기를, ‘홀(笏)을 꽂으라.’ 찬한다.
손을 씻고 닦기를 마치면, 【손 씻고 닦는 것은 찬하지 아니한다.】 찬하기를, ‘홀을 잡으라’ 하고, 인도하여 준소로 나아가서 서향하고 서며, 등가(登歌)가 연주되며, 숙안(肅安)의 악과 열문의 춤이 시작된다.
집준자가 멱을 들고 울창(鬱鬯)을 따르면, 집사자가 찬(瓚)으로 이 울창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神位)앞에 나아가서 북향하고 서면, 찬하기를, ‘꿇어앉아 홀을 꽂으라.’ 한다.
집사자 한 사람은 향합을 받들어 올리고, 또 집사자 한 사람은 향로를 받들어 올린다.
알자가 ‘삼상향(三上香)하라.’ 찬하면, 집사자가 노(爐)를 향안[案]에 드린다.
〈분향을 마치면〉 집사자가 찬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찬을 잡고 술을 땅에 부은 다음에, 찬을 도로 집사자에게 준다.
대축(大祝)이 폐백 광주리[幣篚]를 헌관에게 주면, 헌관이 폐백을 받아 가지고 폐백을 드리는데, 폐백을 대축에게 주어 안(案)에 드린다. 【무릇 향을 바치거나, 찬을 주거나, 폐백을 주는 것은 모두 헌관의 오른쪽에서 하고, 노를 드리거나, 찬을 받거나, 폐백을 드리는 것은 모두 헌관의 왼쪽에서 한다. 작을 주고, 작을 드리는 것도 이에 준한다.】
알자(謁者)가 찬하기를, ‘홀을 잡으라.’ 하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면, 등가(登歌)가 그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지게문을 나와 앞 기둥 밖에 나아가서 중앙에 북향하고 서면, 알자가 찬하기를, ‘재배하라.’ 하고, 다시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등가(登歌)가 그칠 때를 당하여 축사는 모혈반(毛血槃)과 간료등(肝膋鐙)을 앞 기둥 밖에서 가지고 들어가 신위 앞에 드리고, 【모혈반은 간료등 뒤에 놓고, 간료등은 변의 왼편에 놓는다.】
축사가 다시 간(肝)을 취하여 지게문을 나와 이를 노의 숯불에 구워 가지고 준소로 돌아가서 헌관에게 준다.
이미 관(祼)을 이루면, 찬인이 전사관을 인도하여 나가고, 다시 진찬(進饌)할 사람들을 거느리고 주방으로 나아가서, 비(匕)로 우(牛)를 확(鑊)에서 건져 내어 생갑(牲匣)에 담고, 다음에는 양(羊)과 시(豕)를 건져서 각각 생갑에 담아 가지고, 【우와 양과 시를 각각 한갑씩 한다.】 찬만(饌幔) 안으로 들어가 벌여 놓으면, 알자가 천조관을 인도하여 찬소(饌所)로 나아가고, 봉조관도 따라가 현관이 관(祼)을 마치기를 기다려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례가 ‘진찬하라.’ 하면, 알자가 천조관과 봉조관을 인도하여 각각 생갑을 받들어 올리고, 전사관은 찬수를 인도하여 정문 【남문(南門).】 으로 들어간다.
조(俎)가 처음 문에 들어가면, 헌가에서 옹안(雍安)의 악을 연주한다.
축사는 나아가서 모혈반을 거두어 가지고 조계로부터 재랑(齋郞)에게 주어 내보내고, 찬수가 태계에 이르면, 대축이 조계 위에서 맞아 인도하고, 천조관이 신위 앞에 나아가서 북향하고 꿇어앉아 드리되, 먼저 우(牛)를 드리고, 그 다음에 양(羊)을 드리고, 또 그 다음에 시(豕)를 드린다. 【대축이 전 드리는 것을 돕는다.】
드리기를 마치고 나서 생갑의 덮개를 열면, 악(樂)이 그친다.
알자가 천조관 이하를 인도하여 조계로 내려와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대축은 소(蕭)ㆍ서(黍)ㆍ직(稷)을 취하여 가지고 기름[脂]에 버무려 노의 숯불에 구워 준소로 돌아간다.
집례가 ‘초헌례(初獻禮)를 행하라.’고 말하면, 알자는 헌관을 인도하여 준소로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고, 등가(登歌)가 시작되어 수안(壽安)의 악을 연주하고, 열문(烈文)의 춤을 춘다.
집준자가 멱(羃)을 들고 예제(醴齊)를 따르면, 집사자 두 사람이 작(爵)으로 술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고, 찬하기를, ‘꿇어앉아 홀을 꽂으라.’ 한다.
집사자가 작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이 작을 잡아 작을 드리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린다.
집사자는 또 부작(副爵)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작을 잡아 작을 드리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왕후의 신위 앞에 드린다.
알자가 찬하기를,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서 조금 물러나 북향하여 꿇어앉으라.’ 하고, 【악은 그친다.】 대축이 신위의 오른쪽으로 나아가 동향하여 꿇어앉아 축문을 읽고 나면, 악을 〈다시〉 시작한다. 【순녕(純寧)의 곡(曲)을 노래한다.】
알자가 찬하기를, ‘면, 복, 흥’이라 하고, 곡(曲)이 마치고, 풍악이 그친다.
알자는 헌관을 인도하여 지게 문을 나와서 앞기둥 밖으로 나아가서 중앙에서 북향하고 서면, 알자가 ‘재배하라.’ 찬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면, 문무(文舞)는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나아가고, 헌가는 서안(舒安)의 악을 시작한다.
춤추는 사람들이 각기 설 자리에 서면, 악이 그치고, 헌관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집례가, ‘아헌례(亞獻禮)를 행하라.’고 말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고 준소로 나아가 서향하고 서면, 헌가에서는 수안(壽安)의 악과 소무(昭武)의 춤이 시작되고, 향악(鄕樂)도 같이 연주한다.
집준자가 멱(羃)을 들고 앙제(盎齊)를 따르면, 집사자 두 사람이 작으로 술을 받고, 알자는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하기를, ‘꿇어앉아 홀을 꽂으라.’ 한다.
집사자가 작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이 작을 잡아 작을 드리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린다.
집사자가 또 부작(副爵)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작을 잡아 작을 드리는데, 잔을 잡사자에게 주어 왕후의 신위 앞에 드린다.
알자가 찬하기를,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라.’ 하고, 풍악이 그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지게문을 나와 앞 기둥 밖으로 나아가서 중앙에서 북향하여 서면, 알자는 ‘재배하라.’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집례가, ‘종헌례(終獻禮)를 행하라.’고 말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예를 행하기를 아헌의 의식과 같이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헌관이 이미 제자리로 돌아오면, 집례가 ‘음복 수조(飮福受胙)하라.’ 한다.
대축이 준소로 나아가서 작으로 뇌(罍)의 복주(福酒)를 따르고, 축사는 조(俎)를 가지고 나아가서 신위 앞의 조육(胙肉)을 던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음복위(飮福位)에 나아가 서향하고 서면, 찬하기를, ‘꿇어앉아 홀을 꽂으라.’ 하고, 대축은 헌관의 왼편으로 나아가 북향하고 서서 작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작을 받아 마신다.
대축은 빈 작을 받아 점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조(俎)를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조를 받아 집사자에게 준다.
집사자는 조를 받아 가지고 조계로 내려가 문밖으로 나간다. 알자가 찬하기를,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 일어나라.’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례가 ‘재배하라.’ 하면,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재배하고, 또 집례가 ‘변(籩)ㆍ두(豆)를 거두라.’ 하면, 대축이 들어가서 변ㆍ두를 거두고, 【거둔다는 것은 변ㆍ두 각 한 개를 제 자리에서 조금 옮겨 놓는 것이다.】
등가는 옹안(雍安)의 악을 연주하며, 거두기를 마치면 풍악이 그친다. 헌가는 경안(景安)의 악을 연주하며, 향악도 함께 연주한다. 집례가 ‘사배하라.’ 하면,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사배하고, 악은 한 곡[一成]을 마치고는 그친다.
집례가 ‘망예(望瘞)하라.’고 말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망예위(望瘞位)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서고,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 망예위에 나아가서 서향하고 선다.
대축이 기장밥[黍飯]과 피밥[稷飯]을 취하여 백모(白茅)로 싸서 비(篚)로 묶고, 또 축판(祝版)과 폐백을 취하여 가지고 서계(西階)로 내려가서 구덩이[坎]에 놓는다.
집례가 ‘묻는 것이 가하다.’고 말하면, 흙을 넣어 구덩이의 반쯤 차도록 묻는데, 전사가 이를 감시한다.
알자가 헌관의 왼편으로 나아가서 예가 끝났음을 고하고, 알자는 다시 헌관을 인도하고 나간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찬인은 감찰 및 모든 집사를 인도하여 함께 현(懸) 북쪽의 배위로 돌아가서 선다.
집례가 ‘사배하라.’ 하면, 감찰 및 여러 집사들은 모두 사배한다, 찬인이 차례로 인도하여 나가고, 아악 령은 공인과 〈문무ㆍ무무〉 이무(二舞)를 거느리고 나간다.
전사ㆍ대축ㆍ궁위령은 신주를 감실에 들여넣기를 보통 때의 의식과 같이 한다.
집례는 알자ㆍ찬자 찬인을 거느리고 현 북쪽의 배위로 나아가서 사배하고 나간다.
전사관과 전사는 각기 그 소속을 거느리고 예찬(禮饌)을 걷어치우고, 궁위령은 문을 닫고 내려와서 물러가 복명(復命)하면, 헌관 이하 행사한 집사관은 각기 재소(齋所)로 돌아간다.
1각쯤 있다가, 유사가 노부(鹵簿)를 재방(齋坊) 남문 밖에 벌여 놓기를 올 때의 의식과 같이 한다.
헌관 이하 행사한 집사관들은 바깥 문밖에 이르러 차례로 말에 오르고, 궐문 밖에 이르러서는 다시 말에서 내려서 뜰로 들어가 차례로 서서 복명하고, 사배하고 나서 물러간다.
헌관(獻官) 1인 【1품.】 , 천조관(薦俎官) 1인 【2품.】 , 집례(執禮) 1인 【4품.】 , 전사관(典祀官) 1인. 【봉상시(奉常寺)의 관원으로 한다.】 , 대축(大祝) 1인, 축사(祝史) 1인, 재랑(齋郞) 1인, 협률랑(協律郞) 1인, 전사(殿司) 1인, 궁위령(宮闈令) 1인, 장생령(掌牲令) 1인, 아악 령(雅樂令) 1인, 봉조관(捧俎官) 3인, 알자 1인, 찬자 1인, 찬인 1인이다.”
하였다.
【원전】 2 집 646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주-D001] 등가(登歌) : 궁중 연례(宴禮)나 제향(祭享) 때에 당상(堂上)에 악기를 배설하고 조종(祖宗)의 공덕(功德)을 노래하는 악(樂).
[주-D002] 헌가(軒架) : 대례(大禮)나 대제(大祭) 때에 아뢰던 악(樂)으로, 종고(鍾鼓)를 틀에 걸어놓고 관현(管絃)을 갖추어 침.
[주-D003] 생방(牲牓) : 희생이라 쓴 방목.
[주-D004] 구성(九成) : 한 곡의 연주가 끝나는 것을 일성(一成)이라 함.
[주-D006] 앙제(盎齊) : 술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