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진흥법 국회 통과에 즈음하여
교실에서 쫒겨난 한자와 서예교육 .. "대중의 고전화!!!"
(사회지도자들이 四字成語 쓰기를 좋아하되, 한문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현상)
학정 이돈흥 - 월간서예 2019. 3월호 77면-
2018년 11월 서예 진흥에 관한 법률(서예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2019년 6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안다. 서예술이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서예진흥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지만, 모든 서예인이 힘을 모으고 비서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홀딩스의 홍석현 회장, 최재천 변호사, 유성엽 국회의원 등등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예진흥법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서예 교육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국고를 지원하고, 국제 협력과 해외 진출 지원, 서예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나 단체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더 시급한 것이 있다. 우리의 정신을 말살시키는 어문정책이다. 우리 언어의 70% 이상은 한자다. 한자는 東夷族이 만든 문자로 동아시아의 공통 언어 문자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것을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통탄할 일이다. 한자와 서예는 교실에서 쫓겨난 지 오래됐다. 동양 삼국을 비교해보면 우리의 교육정책이 얼마나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은 말할 나위가 없고, 일본은 한자와 假名(가나)를 함께 쓴다. 그러면서 한자가 자기들의 글이라 한다. 한자와 가나가 일본의 정신이라면,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우리의 정신은 한자와 한글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교육현장에서부터 쫓아내고 있다. 반면, 서양의 외래어는 범람하여 영어인지 국어인지 모를 용어들이 난무한다. 언어파괴 지경이다. 언어가 파괴되면 정신도 따라서 파괴되고 결국, 정신지배를 받는다. 이미 겪지 않았던가, 일제가 우리의 글을 파괴하려 한 것을.
표현의 다양성은 좋다. 그것은 현재의 정서를 풍부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한글의 우수성을 대변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상은 꽃을 꺾어 화병에 꽂는 것과 같다. 한자 교육 없는 서예진흥은 화병의 뿌리 없는 꽃과 같다. 뿌리가 없이 어찌 열매를 맺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정신적 뿌리를 내어주면 미래가 없다.
한자와 한글의 병기는 우리의 언어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가까이 일본을 보자. 한자를 모르면 대학 진학은 물론 졸업도 어렵다.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떠한가. 문화혁명의 폐단을 겪으며 한자와 서예교육을 의무화 하고 있다. 그들은 피부로 느끼고 움직이고 있다. 스스로의 고전을 모르면 미래의 경쟁력이 없다는 냉철한 판단이다.
한자와 한글의 병기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한자교츅을 통한 고전의 깊은 연구뿐만 아니라, 서단의 명확한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 고전의 깊은 연구와 통찰이 없는 서예기법 연마는 書奴일 뿐이다. 법률이 시행되면, 고전이 될 서예술을 진흥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달리 그럴듯한 ‘서류’를 진흥할 수도 있다. 서단이 한 마음으로 냉철한 기준을 마련할 장을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 중국은 오래전부터 서품을 나누면서 성장해왔다. 서로의 작품을 논하고 반박하면서 논쟁했다. 지금의 우리는 인정할 만한 공식적인 기준이 있는지, 지금의 수많은 공모전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작품의 수준보다 출품 수량으로 우열을 가리려는 作態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세이다. 서예진흥법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예술의 가치를 높이고 깊이를 더하기 위한 공신력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예술과 학문의 한 분야로써 뿌리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미국 건국 100년이 되는 해이다. 100여 년 전에 白凡 선생께서 소원하셨던 우리나라는 지금, ‘완전한 자주독립’이 되었는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나라가 되었는가? 깊이 고뇌해야 한다. 앞으로의 100년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써 해야 할 일은 근본을 다지는 일이다. 그 시작은 한자교육으로부터 발을 딛는 것이라 생각한다.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예술가는 철학자여야 한다.’고 했다. 서예술에 대해 ‘철학의 극치에서 비로소 예술이 펼쳐진다.’고 말하고 싶다. 예술을 위해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철학적 소양을 갖춰가는 사람이 작품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遊於藝’란 그런 경지에서 노닐 수 있는 경계가 아닐까? 고전이 대중화 되면 더 이상 고전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대중이 고전화 된다면 우리는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우리 서단이 깊은 통찰과 행동으로 대중이 고전화 되는 길을 열 수 있기를 바라며, 晩時之歎이 있지만 우리 민족의 교육을 책임지는 이들의 大悟覺醒을 촉구하는 바이다.
-己亥年 새아침 觀松齋에서 학정 이 돈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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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주민센터에서 서예를 지도하던 중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1955~1959년 출생자 대다수의 분들이 '한자무풍지대'로 ,
학교에서 한자교육을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글 전용 세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대학교(이과 선택) 과정 중에
용케도 한문교육과정이 피해가는 바람에
눈치로 알거나 업무상 깨우친 외에는 체계적인 한자의 원리와 한문을 알지 못하였다.
어떤 분들은 이유가 있다고 하시면서....
바로 '박지만'이 입시를 수월하게 치르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신다.
지방인 경우는 입시제도 시행이 늦게 전달되는 관계로
한자교육의 공백기는 더 커졌다고 한다. -*카더라*-
--그렇지만 사실은
박지만의 출생년도와 진학년도, 한글전용 기간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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