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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엄마의 기록 - 센님바리(千人針)를 뜨다/ 홍윤표 천자문(千字文) 강의

雅嵐 2019. 8. 12. 02:17

<센님바리를 뜬다>

 

교동국민학교 --> 전동국민학교

 

아마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3~1944년 쯤일 것이다.

 

목면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어깨부터 허리춤까지 대각선으로 묶는 것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허리에 둘러 메었다.)

도시락이나 책, 소지품을 놓고 둘둘 말아 둘러메는 것이었다.

하학길에는 걷는대로 뛰는대로

빈 도시락 속에서 숟가락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센님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린 아들이 소집을 당하면

그 엄마는 눈물에 눈이 퉁퉁 불어

센님바리에 빨간 십자수('가께-X'라고 했다)를 하나씩 떠달라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부탁했다고 한다.

천 명의 사람에게 센님바리(천인침)를 받으면

그것이 총알을 막아주어서

무사히 아들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한 번 떠난 아들들은 돌아오는 경우가 없었다.

그게 아마도 강제 징용을 간 것이었던가 보라고 하신다.

 

센님바리 천은

베틀로 짠 길이 그대로를 쓰는데

아기 기저귀도 그렇게 썼다고 한다.

아마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생명줄로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지금 90대 초반쯤 되었을

그때 또래들은 시부대를 가고 다음으로 병대를 갔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다시 군대를 가고

6.25가 발발하여 또 의용군이 되어 나갔다. 

 

<천인 천자문>

소장처 : 서울역사박물관, 홍윤표 교수께서 보내주심.

 

 

 

 

홍윤표교수 강의자료 중에는

천인천자문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천인의 지혜가 모이기를 바라며

석학 천 명으로부터, 돌아가며 각각 한 글자씩 쓰게 하고

서명과 도장을 받아 돌이 될 때 아이에게 선물하여 간직하게 하였다.

 

한글 속에 담겨 있는 과학원리 http://blog.daum.net/windada11/8765882

 

 

<천자문>

양나라 고조(무제, 500년 내외)는

어린 자손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왕희지 글씨 중에서 각각 다른 천 자를 한 자씩 베껴내었다.

이를 흥미있게 지도하기 위해

주흥사로 하여금 율조를 넣어 외기 좋은 문장을 만들게 하였다.

맹자 '학이시습지'는 배우고 습송하는 학습의 기초 체재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흥사는 하룻밤새 이를 배열해가며 고심하여 짓느라 머리가 하얗게 셌다.

그래서 달리 백수문이라고도 이른다.

 

글자공부의 기초(소학)는 기원전 약 800년 전부터 육서를 사용했고

진시황(200년 내외)도 막내아들 호해를 가르치는데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낱자를 육서로 배우고 나면, '類合'으로 상대되는 말과 낱말을 배우고,

문장으로 배워야할 교재가 필요했다. 사서삼경은 아직 어려웠다.

천자문은 붓글씨와 글자 공부가 분리되지 않은 시대에

왕희지의 '書'를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 기초 '字' 천 글자를 함께

외며 성운을 익히게 한 교재이다. 소학의 다음 단계로 적합하다.

그러므로 문자나 문장, 성운 등이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

붓글씨 교재로만 적합하다.

현재 남아있는 왕희지 집자성교서와 천자문의 글자가

대부분 공통된다.

천자문 역시 왕희지 글씨의 집자였던 것이다.

 

아마도

천 명의 사람과 천 개의 글자로

건강과 지혜를 바라는 부적의 역할로

그 역사가 천인침에도 이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