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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 정몽주 정 양지휘

雅嵐 2022. 2. 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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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집 제1권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 겸 동지경연춘추관사 홍문관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知中樞府事兼同知經筵春秋館事弘文館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 신(臣) 유성룡(柳成龍)이 하교를 받들어 교정(校正)하다. / 시(詩)

 

양 지휘사에게 올리다〔呈楊指揮〕 이름은 준(俊)이고, 하남비호위(河南飛虎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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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쌔고 용맹한 데다 책략도 넉넉하니 / 精悍饒奇略
공과 같은 재주는 옛날에도 드물었네 / 公才古亦稀
연산에서 일찍이 적진을 무너뜨렸고 / 燕山曾陷陣
노수에서 멀리까지 위엄을 펼쳤었지 / 瀘水遠宣威
부귀는 금대 위에 엉겨 있고 / 富貴凝金帶
공명은 철 갑옷에서 일어나네 / 功名起鐵衣
함께 요동 바다를 지나왔는데 / 同過遼海上
이별 길에 석양이 기울려 하네 / 別路欲斜暉

 

 

[주-B001] 유성룡(柳成龍) : 1542~1607.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豐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6년(명종21)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군무(軍務)를 총괄하여 국난을 극복하였다. 저서로 《서애집(西厓集)》, 《징비록(懲毖錄)》 등이 있다. 1584년(선조17) 선조가 유성룡에게 《포은집》을 교정하고 발문을 짓도록 명하였다. 이에 관한 전말은 유성룡의 〈포은집발(圃隱集跋)〉에 자세히 실려 있다. 《西厓集 卷18》
 
[주-D001] 연산(燕山) : 몽고 지방에 있는 연연산(燕然山)이다. 후한(後漢)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흉노족을 크게 무찌른 뒤에 이 산에 올라가 바위를 깎아 공적을 새기고 한나라의 위덕(威德)을 기록하면서 반고(班固)에게 명(銘)을 짓게 하였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주-D002] 노수(瀘水) :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중국의 운남성(雲南省)을 거쳐 양자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박대현 (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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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도 국서련 전국휘호대회 명제이다.

정희하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현장 휘호대회에 첫 도전을 했었던 작품이다.

집에서 먹물을 갈고 농도를 점검하고 통에 담았다.

벼루와 노트와 연습지, 붓, 서진... 배낭에 둘러메고

내 자리배정 번호를 뽑아 들고 체육관 바닥에 앉아 준비를 했다.

주최측 도장이 찍힌 화선지를 두 장 받아들고 붓을 대려는데

심장이 뛰었다. 

 

두근거리고 숨이 벅차올라 

화선지에 닿은 붓이 몇 자를 지나도록 좀체로 탄력을 받지 않는다.

붓이 푸욱 물러 주저앉아 획에 뼈대가 생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응체되어 붓끝까지 기운이 도달하지 않았다.

예전에 자전거 배울 때

핸들을 잡은 양 손의 힘을 뺀 뒤에야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수~왁 나아가던 생각이 나고

수영장에서도 몸에 힘을 뺀 뒤에야 뜨던 생각이 난다.

 

계단식 관람석에 가까왔던 내 자리, 많은 사람들이 내 붓끝만 보는 듯했다.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는데

남들처럼 청심환이라도 먹고 출전할 것을... 그랬었다.

이렇게 기세가 힘찬 내용을

손으로 쓴 만큼도 붓으로 써내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붓글씨의 마음공부가 더욱 드러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고른 글이 아니라서 내용도 깊이 모르고 쓴 것 같다.

경암님이 좋아하실 내용의 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