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집총간 > 태재집 > 泰齋先生文集卷之二 > 詩○七言絶句 >二百四十四首/雪後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설후(雪後, 늦눈과 함께), 유방선(柳方善)
지난해 쌓인 눈 녹지 않은 외딴 마을에
그 누구라서 사립문을 두드릴까 마는
밤이 오고야 홀연 맑은 향기 풍겨오니
매화 꽃 어느 가지 꽃망울 터뜨린 걸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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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어딘가에 연습 작품 한 보따리가 아직도 있나보다.
명제로 받은 작품을 모두 써보았을텐데
지금까지 정리한 뭉치 외에 어딘가 또 있나보다.
또한번 호되게 정리를 해보고
못찾으면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써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이 시 역시 휘호대회 명제 중 하나였다.
臘
'랍'의 예서는 아래 형태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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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선 柳方善 1388년 ~ 1443년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할아버지는 관찰사 유후(柳厚)이고, 아버지는 유기(柳沂)이다. 어머니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종덕(李種德)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국자사마시(國子司馬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409년 아버지가 민무구(閔無咎)의 옥사에 관련된 것으로 연좌되어, 청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영천에 이배되었다.
1415년 풀려나 원주에서 지내던 중, 참소로 인하여 다시 영천에 유배되었으나 1427년(세종 9)에 풀려났다. 유배생활 중의 학행이 높이 드러나 유일(遺逸: 과거를 거치지않고 높은 관직에 천거될 수 있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선비)로 추천되어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2세 무렵부터 변계량(卞季良)·권근(權近) 등에게 수학하여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다. 특히 유배생활 중에는 유배지 영천의 명승지에 ‘태재(泰齋)’라는 서재를 지었다. 그리고 당시에 유배 또는 은둔생활을 하던 이안유(李安柔)·조상치(曺尙治) 등 문사들과 학문적인 교분을 맺고, 주변의 자제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이보흠(李甫欽) 등의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즉, 정몽주(鄭夢周)·권근·변계량을 잇는 영남성리학의 학통을 후대에 계승, 발전시키는 구실을 담당한 것이다. 원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거정(徐居正)·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강효문(康孝文) 등 문하생을 길러내었으며, 특히 시학(詩學)에 뛰어났다. 경현원(景賢院)과 영천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태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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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유방선 [柳方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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