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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문예인,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 전시품 : <상형문자로 쓴 어·거·주>(증7014), <근역석묵>(구5321) 등 30건 56점
- 전시요약 : 근대기 애국지사이자 문예인 오세창 서거 7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살펴보는 전시
- 전시기간: 2023. 9. 7.(목)~12. 25.(월) * 전시기간은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Ⅱ(202-4·5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은 3·1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이자, 우리 서화의 수집·감식·연구에 힘쓴 근대기 대표 문예인文藝人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세창 서거 70주년을 맞아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오세창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옛 것을 본받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문예인 오세창의 손길이 남아있는 여러 작품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주요 전시품 소개
1. <통문관 관안>, 조선 1880년대, 건희10479, 2021년 이건희 기증
조선시대 외국어 통·번역 업무를 담당한 통문관 관원들의 관직과 성명을 적은 관안官案에 한어(중국어) 역관 오세창의 이름이 보입니다. 오세창은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의 아들로 그의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역관을 지냈습니다. 조선후기의 역관은 외국을 오가며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고 부를 축적했습니다. 오경석은 중국에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고, 서구의 지식이 담긴 책을 조선에 들여와 개화 지식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2. <김정희가 오경석에게 보낸 간찰>, 조선 1850년대, 증9818, 2018년 손세기·손창근 기증
오경석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문인 이상적李尙迪(1803~1865)의 제자로 김정희에게 금석문을 익혔습니다. 이 간찰은 60대의 김정희가 과천에 머물 때 20대의 오경석에게 보낸 것으로, 오경석이 김정희의 글씨와 신라·고려의 시문을 요청하자 김정희가 답한 내용이 있습니다. 오경석의 옛 문물에 대한 관심과 수집 취향은 오세창에게도 이어졌습니다.
3. <독립선언서>, 1919년, 구2766
오세창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조선 독립을 선언했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우리나라가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천명한 독립선언서의 왼쪽 두 번째 줄 상단에 오세창의 이름이 보입니다.
4. <상형문자로 쓴 어·거·주>, 1929년, 증7014,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오세창은 출옥 후 서예 활동에 힘썼습니다. 오세창은 어魚·거車·주舟 세 글자를 상형문자로 쓰고 문자와 관련한 이야기를 행서로 적었습니다. ‘어·거·주’는 “세력이 미약하더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오세창이 독립의 염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5. <옛 기물의 문양과 글자를 임모한 병풍>, 1925년, 증6239,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오세창은 옛 기와와 청동기 등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를 따라 쓰고 설명을 덧붙였으며, 각각의 문양 옆에 직접 새긴 인장을 찍었습니다. 옛 문양과 글자는 서체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장수와 다복 등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세창의 옛 문자에 대한 관심, 다양한 서체, 인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6. <『근역석묵』상·하>, 20세기 초, 구5321·5322. <근역석묵> 상첩의 '고구려 성벽에 새겨진 글자'
오세창은 우리나라의 서예, 그림, 금속과 돌에 새겨진 글자를 수집하고 정리했습니다.『근역석묵』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비석의 글자를 떠낸 종이를 편집하고 설명을 붙인 책입니다. 이 첩은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금석문 탁본을 모아 편찬한『대동금석서』,『금석청완』등과 제작 방식이 유사하여, 오세창이 금석문 연구의 맥을 잇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 <김정희 초상>, 조선 19세기, 증9998, 2018년 손세기·손창근 기증
오세창에게 있어 김정희(1786~1856)는 부친 오경석의 스승이자, 자신의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습니다. 오세창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68년 되는 1924년 여름, 이 그림의 오른쪽에 전서로 ‘완당 선생 초상阮堂先生肖像’을 쓰고 아래에 행서로 소치 허련이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오세창의 기록을 통해 허련이 김정희의 초상화를 그렸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8. <김정희가 쓴『손자』>, 조선 19세기, 동원3440, 1981년 이홍근 기증. <『손자』뒤에 오세창이 쓴 글>
김정희가 해서로 쓴 『손자』는 필체가 독특해 세상에 전해지며 진위眞僞 문제가 일어날 만큼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세창은 서체와 인장 등으로 책의 진위를 감식하고, 김정희가 제자 신헌申櫶(1810~1884)을 위해 쓴 것이라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신헌은 무인武人이었지만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을 만큼 각별한 사이었습니다. 오세창의 감식을 통해 김정희가 신헌에게 전략과 전술의 기본서『손자』를 손수 써서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 <맹원아집>, 20세기 전반, 증8179, 2009년 최장혁 기증
<맹원아집>, 오세창의 시
20세기 전반 문예 인사들은 함께 모여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세창은 문예인들과 맹원孟園이라는 곳에 모여 글을 짓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첫 부분에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1886~1965)이 그린 모임 그림에 이어, 교육가이자 서예가 안종원安鍾元(1874~1951)이 쓴 ‘맹원아집’이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시가 적혀 있습니다. 문예인들 모임의 중심에는 오세창이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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