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이
당당하게 학문 편에 서겠다고 하고 공부만 하였는데
이분의 학문조차 뭉뚱그려 매도됨이 한탄스럽다.
조선총독부 조선어사전 편찬에 열몇명의 국어학자들이 순환 투입되었으니 그 학자들 50여명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결국 조선어는 삭제되고 일본어로 나왔는데 말이다. 당시 손꼽는 최고의 국어학자들이 교체되어가며 감수해서인지 내용은 여느 사전보다 바르고 명확하다.
학문도 운동으로 하는 바람에 언문연구도 중간사다리가 없어지고 말았다.
심지어 주시경선생은 당시 한글은 한글이라하고 일본어를 국어라고 책에 썼는데도 말이다.
36년... 독립은 이제 아득하다못해 체념하신 학자들.
'응애'하고 태어났을 때부터 37세까지 일제강점기를 겪으신 상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
이제
최현배님의 글도, 최남선님의 글도
해석을 해두지 않으면 후대가 읽기 어려운 글이 되어버렸다.
내가 조금이라도 할 일은
선대와 후대의 사다리를 엮는 일이다.
단어 하나하나
존중하는 마음으로 고심을 해서 풀어보았다.
다시
인쇄에 몇 판을 돌려 엎으며
모서리 하나, 누름선의 간격, 편집디자인의 존중....
그렇게도 오랜기간 괴롭혀 만든 디자인을
인쇄하며 부분 잘라버렸다. 검판본까지 보내놓고 말이다.
돈보 재단선 세네카 책등... 내게 새로운 용어공부까지 시켰는데 말이다.
책등이 앞으로도 넘어가고 뒤로도 넘어갔다.
속지보다 작은 표지? 책을 보다 잠시 읽던 곳에 끼워둘 수 있는 날개.
책을 소중하게 느끼는 겉장, 존중하고 갖춘 속지...그걸 더해달라고 했다.
처음 책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그렇게 나와서 그것이 문제 항목이라는 것 조차 없던 일이다.
그 선생님의 경력에도 깜짝놀라 바로 새로 찍은 일이다.
유리같이 반들한 광택의 옆면, 보고서같은 책의 느낌, 손이 베일듯한 날카로움, 모서리 불량....
오래 포슬하고 부드러운 책을 만진 내 손의 감각이 그 책들과 다른 내 책의 감각을 용서할 수 없어
새벽까지 샌드페이퍼로 갈고 핀셋으로 모서리 풀을 붙여 살려낸 뒤
그제서야 발견된 또 하나의 일이 생겼다. 이제 대형사고다.
종일 집안을 서성이다 다시 밤새 표지를 모두 부욱북 뜯어내고자 한다.
이것은 단 한 권도 무료나눔도 할 수 없고 보여주기조차
세종대왕께 죄송스러운 일이다.
눈이 섞인 비까지 내려
오류난 책들과 우산과, 오는 길에는 엄마 드릴 족발과 고기와
(사들고 간다는 전화에 긴 저녁 늦은 외출을 나서다 아이처럼 되돌아오셨다. 그간 내가 시간이 없어 엄마집 고기를 많이 가져다 썼다.)
모임에 쓸 채소와 자반고등어와 과일과....
출판사에 책무게 덜어내고 엄마네 고기무게 덜어내고...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시장에서 오는 길은 이 재미난 소리가 안들렸다.
더이상 선생님의 요구를 맞추어 줄 수 없어 안찍겠다는 출판 선생님께
송곳과 자를 이용해서 교정한 책들 납본하겠다고 함께 들고
돈도 안받고 끝내겠다 하셨지만
종이값이라도 보내드리고 나도 지쳐 교정해 살린 40권으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인쇄와 중앙도서관과 이수시장 길찾기 동선을 짜서 나갔다.
내가 결코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충 몇 권 들고 나섰는데
내가 또 미처 보지 못한 엄청난 실수를 선생님이 발견하시고는
그쪽에 사진찍어 보내며 호통을 친다.
이 무슨 초보같은 짓을 했어.
그분도 그 한가지로 다른 곳의 더 많은 실수는 미루어짐작하고 남으신듯하다.
겉봉투 주소까지 써서 들고 나선 교정된 책과 내 납본서를 보시고는
절대! 국가기록에 아직 남기지 말라고 하신다.
그분 출판 30년 경력에
스스로도 누차의 실수가 감당이 되지 않아 거절하신 일이라고 했다.
저 까다로운 사람 아니예요. 저 순딩이예요. 그렇게 말씀드렸다.
색이 차츰 변하는 거, 면의 다른 느낌, 재단칼날 무디어 너덜대는 거 다 그냥 쓴다 했잖아요.
서두르지 마세요. 천천히 하세요.
새로 다시 찍어주시겠다는 대답을 듣고 들어오는 길이다.
발걸음이 가볍다.
최남선님이
'신자전'을 펴내시며 쓰신 敍 중에서
이번 일에 해당하는 부분에
그 절실함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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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書의 作이 진실로 容易치 아니한지라 剖明은 明敏한 頭腦를 要하며 思辨은 銳利한 判斷을 要하며 調話는 博學과 淹識을 要하며 撰輯은 快手와 敏腕을 要하며 色相 心情 萬類 羣彙를 臨時 發明함에는 三才를 府藏하고 四方을 庖廚하야 物理와 世故에 具諳幷通함을 要하며 移動 轉變 千用 萬例를 隨出 輒應함에는 百家를 肴饌하고 六籍을 笙簧하야 字原과 文典에 兩精變深함을 要하며 查覈 證驗에는 裁判官的 審理를 要하며 搜討檢索에는 探檢家的 發摘을 要하니 이 엇지 尋常한 學者 文人의 可能할 바이랴 字書의 發刊이 또한 容易치 아니하니 事物의 稱號와 動靜의 形容이 各各 其原이 詳하고 體樣의 變遷과 用義의 轉換이 各各 其證이 昭하고 故義의 傳이 條理가 有하고 羣籍의 例가 歸趣가 一하다 할지라도 稀世한 載籍도 可考할 者는 必考하여야 하고 隔絶한 學士라도 可詢할 處에는 必詢하여야 하고 物에 就하야 驗할 것도 有하고 圖를 寫하야 玩할 것도 有하니 這間에 靡費하는 心力과 光陰이 實로 巨大를 要하거늘 더욱 纂輯이 旣成하야도 校勘이 又難하고 辨證이 告功하야도 印工이 非易하야 寫刻과 活板을 勿論하고 訂譌와 監印의 功力이 거의 局外人의 設想不得할 者가 存하며 黃卷으로 粧하고 靑緗으로 帙하야 責任으로써 世에 公하기까지 苦心과 費神이 字書에 在하야 尤極 艱難한 것이니 이 엇지 尋常한 書賈冊肆의 可做할 바이랴 印籍의 便法이 開한 後로 刊出한 字書가 不少하되 대개 作者와 刊者의 厚顔을 掩過치 못함이 實로 有以하다 할 것이오 文運이 日로 昌大하야 字書 功罪의 範圍와 程度가 前日보담 深廣하기 幾倍오 字義의 錯亂이 此時보담 甚할 이 無하되 憂時하는 士가 豈無할가마는 濟艱하는 擧를 未見함도 또한 有以하다 할지로다
자서를 만든다는 것이 진실로 쉽지 않으므로
명확하게 가르는 것은 명민한 두뇌를 요하며
판별하는 사고는 예리한 판단을 요하며
말을 고르는 것은 박학과 깊은 식견을 요하며
찬집은 빠른 손놀림과 민첩함을 요하며
형태 심정 만물 무리를 임시 발명함에는 삼재를 부장하고 사방을 푸줏간 삼아(세상을 부엌드나들듯이 하며) 사물의 이치와 세상의 이러저러한 일에 알아서 갖추어 아우르고 통함을 요하며
이동 전변 천용 만례를 따라 나와 때맞춰 반응함에는 백가를 풍성하게 차려놓고 육적을 생황의 혀와 같이(경서들을 조화롭게 연주) 해서 자원과 문전에 둘 다 섬세하고 변주가 깊음을 요하며
조사하여 증험을 밝히는 것에는 재판관적인 심리를 요하며
찾아내고 검토하는 것에는 탐검가적 발적을 요하니 이 어찌 심상한 학자 문인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자서의 발간이 또한 쉽지 않으니,
사물의 칭호와 동정의 형용이 각각 그 원천이 자세하고,
체양의 변천과 사용된 뜻의 전환이 각각 그 증거가 밝고,
뜻하게 되어 내려온 것이 조리가 있고
여러 서적의 사례가 하나로 귀착된다 할지라도,
세상에 드문 서적에 실린 것도 고찰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고찰하여야 하고 멀리 떨어져 차단된 학사라도 물을 수 있는 곳에는 반드시 물어야 하고
사물에 가지고 경험할 것도 있고 그림을 베껴 완상할 것도 있으니 요사이 허비하는 심력과 시간이 참으로 거대를 요하거늘
더욱 찬집이 이미 이루어졌어도
교감이 또한 어렵고
변증이 공을 알려도
인쇄공이 여의치 않아 사각과 활판을 물론하고 정와와 감인의 공력이 거의 문외한의 상상할 수 없을 것이 있으며
황권으로 표장하고 청상으로 책갑하여
책임으로써 세상에 내놓기까지 고심과 정신의 소모가 자서에 있어서 더욱 지극히 간난한 것이니
이 어찌 심상한 서적책방의 할 수 있는 일일 것인가
서적 인쇄의 편리한 방법이 열린 뒤로 출간한 자서가 적지 않은데
대개 작자와 간자의 후안(후안무치함)을 덮어 지나치지 못함이 참으로 까닭이 있다 할 것이요
문운이 날로 창대하여 자서 공죄의 범위와 정도가 전일보다는 깊이와 넓이가 몇 배요
자의의 착란이 이때보다는 심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시국을 근심하는 선비가 어찌 없을까마는
간난을 구제하는 거동을 보지 못함도 또한 까닭이 있다 할 것이다.
淹 담글 엄, 담그다 적시다 오래되다, 淹識(엄식): 식견이 넓고 깊다.
世故 세고, 세상의 풍속이나 습관 등으로 인한 이러저러한 일.
肴饌 효찬, 비교적 풍성한 음식.
歸趣 귀취, 귀착되는 취지.
這間 저간, 요즈음 요사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그간.
靡費 미비, 물품ㆍ돈 따위를 모두 써 버리거나 허비함.
告功 고공, 성공을 아뢴다는 뜻으로, 건축·시설 등의 준공을 이르는 말.
有以 유이, …할 방법이 있다. …할 수가 있다.
憂時 우시, 時局의 언짢음을 근심함.
濟艱 제간, 국가나 백성을 간난한 지경에서 건져 냄.
然이나 百書의 未備는 다 可忍할지로대 字書의 未備는 寸時도 可忍하지 못할 것이오 百書의 失正은 다 可貸할지로대 字書의 失正은 一點도 可貸하지 못할지니 他書의 害는 一人一時에 止하나 字書의 毒은 萬人萬世에 及함이라 我會가 時病에 對하야 小方을 立한 後로 歲月도 深하지 못하고 功力도 大하지 못하나 康熙字典을 基本하야 內外를 商量하고 古今을 參酌하야 槿漢對譯字書를 纂修한지 이미 屢年于玆라 이 즉 未備와 不洽이 甚多하건마는 時勢의 要求가 또한 尤切한 故로 會中 老師에게 謀하야 泰西字書의 가장 進步한 形式을 倣하야 稽古記事 日用普通의 需로 一小字書를 先竣하기로 하고 旣成한 稿本 中에서 死癈에 近한 字를 棄하고 時用에 合한 義를 加하야 字硏句練 十思九易 五閱年에 비로소 編을 成하고 一邊으로 活字를 新鑄하고 用紙를 別貿하야 徵古 匡俗字 訂劃考 三寒暑에 비로소 功을 竣한지라 본대부터 應急의 備와 通俗의 用을 作하려한 것인즉 字書로 要件을 具備함에는 不足이 固多하거니와 舊謬를 洗剔하고 陳樣을 擺脫하야 新時代의 切求에 適應하는 點으로는 애오라지 少信이 有한 바오 壯言을 許할진대 往百世의 舊欠을 補하고 來百世 義新逕을 開하얏다 하야도 반드시 全妄이 아닐지며 少하야도 本義를 直闡하고 定訓을 確立하야 自語의 權威를 發揮하고 漢學의 蓁莽를 披闢하려 한 一片誠心은 世의 公許를 庶幾可得일가 하노니 失錯의 匡止은 博雅에 有待하고 欠缺의 補苴는 後功을 固期하거니와 다만 此 書가 漢字의 久障을 撤하고 漢學의 積滯를 通하야 新生力 濬發의 漸을 成하면 微勞가 大報를 得함이라 하노라
그러나 백 가지 책의 미비는 다 참을 수 있을지라도(용서할 수 있으나)
자서의 미비는 잠시도 참지 못할 것이요
백가지 책의 바르지 못함은 다 베풀 수 있을지라도
자서의 바르지 못함은 한 점도 베풀지 못할 것이니
다른 책의 해는 한 사람 한 때에 그치나 자서의 독은 만인 만세에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광문회가 병든 때를 만나 작은 방도를 세운 후로 세월도 깊지 못하고 공력도 크지 못하나
『강희자전』을 기본으로 하여 내외를 헤아리고 고금을 참작하여 『근한대역자서』를 찬수한 지 이미 이에 여러 해이다.
이 곧 미비와 흡족하지 않음이 매우 많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추세가 또한 더욱 절실하므로
모임 중 노사에게 꾀하여 서양 자서의 가장 진보한 형식을 준거하여 계고기사 일용 보통의 수요로 하나의 작은 자서를 먼저 마치기로 하고
이미 이루어 놓은 고본 중에서 사폐에 가까운 자를 버리고 시용에 맞는 뜻을 더하여 자와 구를 연구하고 다루기를 열 번 생각하고 아홉 번 바꾸며 다섯 번 교열한 해에(5년 걸려) 비로소 편을 이루고
일변으로 활자를 새로 주조하고 용지를 별도로 사서 옛것을 불러내어 속자를 바루고(옛것을 징험하여 속된 것을 바로잡고) 획을 교정하여 고찰한
삼년의 추위와 더위에 비로소 공을 마친 것이니
본대부터 급선무에 부응하여 갖추고 통속의 용도를 지으려한 것인즉
자서로 요건을 구비함에는 부족이 참으로 많거니와
옛 오류를 씻고 잘라내어 늘어놓는 양상을 벗어나
신시대의 절실한 요구에 적응하는 점으로는 애오라지 소신이 있는 바요 장담하기를 인정하므로
지난 백세대의 옛 흠결을 보완하고 돌아올 백세대의 뜻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하여도
반드시 온전한 망령됨은 아닐 것이며
적어도 본의를 바로 밝히고 정훈을 확립하여 자어(우리 국어)의 권위를 발휘하고 한학의 우거지고 얽힘을 열어 개척하려 한 한조각 진실한 마음은 세상의 공변된 인정을 바라건대(거의)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하는 것이니
실착을 바로잡는데 그친 것은
박아를 기다림이 있고 흠결의 수선은 후공을 굳게 기약하거니와
다만 이 자서가 한자에 오래 가로막을 거두고(오랜 장애를 걷어치우고) 한학의 적체를 소통하여
신생력의 심오한 발휘에 차츰 나아가기를 이루면
미미한 노고가 큰 보답을 얻음이라 할 것이다.
纂修 찬수, 글이나 자료 따위를 모아 정리함. 또는 그렇게 하여 책으로 만듦.
庶幾 서기, 바라건대. 거의. 어지간하다. 괜찮다. 근사하다.
蓁 우거질 진, 나무가 더부룩이 나다. 많다.
博雅 박아, 학식이 넓고 성품이 단아한 사람.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I&nNewsNumb=202003100051
https://blog.naver.com/mj94920/223229908390
하.....
왼편 오른편의 여백이 반줄씩 어긋난 면이 수두룩하다.
아래 페이지를 집중적으로 보며 화라락 넘기니 여백이 면표시가 넓었다 좁았다 올랐다 내렸다 한다.
부드러운 제본은 하나씩 끼워붙이는 방식이고
칼날같은 제본은 16면씩 접어서 제본하는 방식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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