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책만 보는 주부

우리/일기

깨와의 인연은 어찌하나요? - 태백산 각화사

雅嵐 2024. 1. 29. 02:41

태백산 각화사

1980년대

당시 어린 때부터 불심이 깊은 친구가 한여름 단 3일 밖에 없는 여름휴가를

조계사 수선회 하계수련에 나와 함께 참가신청을 해두었다.

영주-봉화-춘양... 기차타고 시외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비가 오다 그치다 땡볕에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었다.

맑은 얼굴의 스님이 합장하며 나무가 이어져 그늘진 길 아래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새벽에 일어나 풀도 뽑고

근로하지 않으니 절에서는 두 끼만 먹는다고 하였다.

'화두'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다.

 

면벽수행에서 나는 뒷문이 활짝 열려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비에 젖은 바위 사이사이 풀들과 이끼들이 맞는 빗방울을 보며

태풍이 쓸고 지나가 쓰러진 벼들을 함께 쓰러져가며 단으로 묶는 농부들을 생각했다.

발우공양에서 왜 밥알을 한 톨도 남기면 안되는가.

쓰러져 패인 벼, 탈곡하다 눈에 띄지 않아 줍지 못한 벼, 정미소에 떨어져 내게 오지 못한 쌀, 밥을 푸다 밥솥에 붙어 씻기는 밥.....

적어도 내 앞에 놓인 인연은 내가 놓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오후에 오래 걸어 오르던

거름이 좋을 짙고 푸슬한 흙에 간혹 한약재로 쓰일 잎도 던져져 있던

암자로 가는 길은 참선길에 막아두었다.

스님의 유일한 식사라던 오이가 동동 떠 있던 돌확. 내일이면 기도가 100일째라고 하셔서 숲속 저멀리 도망가 계셨었다.

 

백일장에서 '가을'이란 명제를 주어 시를 썼다.

수필보다 짧으니 택한 분야이다.

이미 등단에 버금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들을 놔두고

장원을 시켰다. 이런....

아마도

교수님의 '자연과 인간과의 합일, 조화...' 등의 수업내용과 내 시의 의도가 잘 맞았었나보다.

"어머니, 가을답게 살렵니다." 그 한 줄에 반하신게다.

학보사에서는 수정하지 않으면 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수정을 약간 했다. 무서워서 못하겠다. 오히려 소합향을 버리고 당랑환을 취하는 경우가 될 것 같아 말이다.

반송해왔다. 다시 수정하라고 하였다. 수정을 못하고 결국 조사 하나 고쳐 발간되었다.

그때 그 학보사 수장은 책을 보내오셨다.

정종기수필집 커피는 무엇으로 마시는가, 정종기, 책:봄, 2024.

머리말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 했다. 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얻을 수 있는 시간. 하루 3시간이면 10년이라고 계산해두었다. 일반인 주부에 적합한 기간이다.

'오스트로프스키의 질문'은 '화두'와 같은 말 같다. 커피? 손으로 마시나? 입으로 마시나? 글에 빠져든다.

 

깨를 볶아야 할 때면

각화사의 참선과 화두가 생각난다.

동동 떠서 그릇 가장자리에 붙거나 혹 개수대로 몇 개, 주변으로 몇 개 튈 때면

단을 묶어 말리고 털고 한 톨이라도 나갈까 쓸어 모았을 주름진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거기에는 잔 잎이 까맣게 마른 것과 잔 꺼풀 등이 나온다. 다 먹어도 괜찮은 것들이다.

말리다 비를 맞췄는지 거뭇거뭇한 것들이 반이다.

 

젖은 손가락 끝으로

열나절

저리로 도망간 깨를 한톨씩 다시 붙여 모은다.(장경린은 왜 손끝에 침을 발라 담뱃재를 붙여 모은 걸까.)

난 그래서 부엌에서 맨날 열나절이다.

깨와 나와의 인연.

 

책 두 권에 해당하는 논문을

겨우 15면에 줄여 내려니 내 뜻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벙벙 뛰어 넘어갔다.

 

그래도

논술하고자 하는 그 뜻을 심사위원들은 아셨기에 감사하다.

책 두 권을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580년 동안 연세 80이 넘도록 연구하신 구학문의 학자들이 

왜 어려워하시고 못푸셨는가.

겨우 몇 년 현대책으로 몇 권 보신 분들이 분노하신다.

 

최현배 선생은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된 때에도

자방고전을

미제로 남기시게 되었는가.

그렇게 쉬운 걸

최현배선생은 바보란 말인가.

 

내가 한 자리 얻을 때면

늘 혹독한 고초를 치른다.

관끼리 싸우는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