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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황인숙)

雅嵐 2007. 2. 23. 19:23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黃       仁       淑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 하 하 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푸드득 푸드드득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 버리고

어둔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낱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  *  --

 

* 80년대 쯤 어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베껴놓은 듯하다

 

* 이 시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장독대가 있는 중간옥상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 고양이 몇마리.

  "에미야, 여기 고양이를 좀 봐라."

  "고양이가 에미를 보고 오는 것 같애. 에미랑 닮았어"

  "고양이는 자존심이 있어. 음식을 주어도 냉큼 받아먹지 않아.

   고양이는 자리를 골라 앉을 줄 알아. 남들이 다 보는 자리 같은 데 아무렇게나 앉지 않아.

   고양이는 사색을 할 줄 알아. 햇볕을 받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코끝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는 것 같아.혼자 즐길 줄을 아는 것 같애"

  아버님은 이미 이 시를 마음속에 다~아 써놓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아침 출근하는 상머리에 앉아 생선뼈를 발라 밥술에 얹어 주시며

  내가 고양이처럼 생선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다

 

*시어른이 안계신 명절은 암울했다.

  신이 나지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목록을 적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갔다가는 빈 손으로 오고....

  설 음식 준비하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한복 동정 새로 갈고, 다림질 하고...

  그런 것도 안했다.

 

* 추석 때마다 내가 부추전 좋아한다고 텃밭에 부추를 한상자씩 뜯어 오셔서 

  제수음식 밀어놓고 그것부터 다듬어 신문지에 조금씩 간수하느라 늘 어깨가

  빠지는 듯 했다.

  어떤 날 전화를 하셨다. 긴 장마비에 부추가 다 녹아 없어졌으니 어쩌냐고...

  나는 속으로 너무 좋았다.

  대문을 열어드리는 아버님 양손에 고구마줄기 두 단이 들려 있었다.

  고속버스 타려는데 마침 유성장이 열려, 2단에 천원, 싸서 사셨다면서...

  그 명절에도 밤늦도록 고구마순 껍질 벗겨 삶아서 간수하는라 어깨가 뻐근했다.

  나는 '풋고추밀가루찜무침'을 좋아하는데 아버님도 무척 좋아하셔서

  오시면 늘 한냄비 쪄 무쳐서 한끼에 뚝딱하곤 했다. 못먹은지 2년이 되어간다.

  아버님이 오시면 나는 늘 부엌에서 자반고등어를 그릴에 구우며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흥얼거리며 밥을 했다.

  재미있다고 자꾸만 부르라 하셨다.

  천상병의 '귀천'(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과

  김광섭의 '저녁에'(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읊으시곤 하셨다.

  작년에 미국에서 잠깐 귀국한 동창이 나더러 학창때 즐겨 부르던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불러보라 해서 또 추억에 젖었었다.

 

  부엌에 오셔서는

 

  "에미야, 힘들지?"

 

  그 음성이 자꾸 들리는 듯 하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나를 낳고 기르신 친정 부모님 당당하게 우리집에 오셔서

  한달씩 머무르며 당당하게 밥해드리지 못하는게 왜 이리 걸리까.

  오셔서도 늘 안절부절 하시며 빨리 가시려고만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들어 엄마가 자꾸 다치셔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