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책만 보는 주부

우리/좋아하는 글

고양이(전은경-학교신문에서..)

雅嵐 2007. 11. 13. 09:54

 

                                 고               양              이

 

                                                                    전   은   경(국어국문학과 2년)

 

 

야옹하고 오늘도 시작합니다.

감았다 뜬 눈에

이미 마법은 시작되었습니다.

옷처럼 얹혀있던 어둠이

물러나고 세상은 발가벗었습니다.

가늘고 긴 꼬리를 기분 좋게 살랑이며

이내 달립니다.

먹기 위해

 

향기롭게도 비릿함이 가득한 생선가게 앞

그녀는 멈춰섭니다.

얼굴에 털도 나지 않은 하찮은 인간이

이놈의 고양이 하고 소금을 치기에

이내 달립니다.

흥, 살쾡이 같은 여편네

 

개울가 앞에 앉아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뽀족한 귀, 초록빛 영롱한 두 눈

부드럽고 짧은 회색 털

 

자신을 비추는 물속에 물고기가

헤엄을 칩니다.

아, 맛있겠다.

그러나 두 발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발이 젖는 건 싫고 물고기는 먹고 싶고,

배는 고프고 발이 젖는 건 싫고

망설이던 고양이는 이내

우아한 동작으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갑니다.

 

결국 온 세상에 버릇처럼

어둠이 찾아오고 커다란 달이

둥실 떴습니다.

달은 무슨 맛일까

생각하면서 그녀는 우아하게도

쓰레기통을 뒤집니다.

자존심이 발톱처럼

똑똑똑똑 부러져 나갔지만

괜찮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고양이니까요

배가고파 들어간 허리선이 아름다우니까요

 

고양이는 빛나는 초록 두 눈을

살포시 감고 잠을 청합니다.

그날 밤 그녀는 달을 와삭와삭

뜯어먹는 너무나도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    *    --

 

 

 

<시 부문 당선소감>         - 전 은 경 -

 

  저는 언제나 제 글이 부끄럽습니다. 시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글자의 나열들을

적어놓고 언제나 부끄러워 감춰두기만 했습니다. 제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쓰는 것 만으로도 좋아 낙서처럼 흘려놓은 글들을, 연습장 속에 숨어 그대로

묻어졌을 글들을 이번 대전대 문학상에 응모하는 것은 사실 커다란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용기의 계기는 저희 과 교수님의 수업에 보너스 점수를 받기 위한 아주

불순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저에겐 치부를 남에게 보이는 것만 같은 부끄러움이

동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순한 계기와 함께 고개를 든 뽑히면 좋겠다는 엉큼한

생각이 현실이 되었을 때 저는 그저 멍하니 꿈일까 하고 파란 가을 하늘만을 바라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 바깥에 내놓은 글이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았다는 그 단순

하지만 커다란 사실에 저는 감격, 또 감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신의 글이 인정받는다는 것 만큼의 커다란 축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걸음마의 인정이 어머니가 주신 보상의 손길 같은 따뜻한 느낌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고광률 국장님께서 자신의 글이 잘 된 글인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경지에 오르긴 커녕 이제 막 첫걸음을

띤 햇병아리일 뿐입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제글이 잘 되었는지 어느 점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한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저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경험들을 될 수 있는 한 흡수하여 그 경험들을 글 속에

풀어 넣어 점점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끝없이 성장하고픈 욕구가 있는한 제 글은 언제나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   *   ---

 

*당선소감의 마지막 줄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