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장 경 린
23시 45분 : 않았다. 식빵을 커피에 적셔서 빨아먹는
25시 26분 : 비가 온다. 아주 많은 비가 아주 큰 밤을 적시고 있다. 비의
26시 34분 : 개고기가 먹고 싶다
29시 51분 : 나의 모든 것을 내가 아닌 모든 것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이란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이 내게 준 그것이다. 네온사인
으로 만든 십자가 처럼 확실하게
45시 86분 : 최순호가 쓰러진다. 게임이 잠시 중단된다. 최순호가 일어난다.
재개된다. 이제 고작 3분 정도 남은 시간을 허겁지겁
98시 421분 : 확신이 날 찾아왔다. 나는 그를 달래서 돌려보낸다. 다시는 날
찾지 마라 알겠니?
388시 914분 : 하품을 하다. 하품도 내게는 아픔이다. 삶을 너무 과식했나 보다.
배탈이 날 것 같다. 해탈도 내게는 배탈이다. 과식이
489시 973분 : 기어가고 있다. 숨 죽이고 있는 나는 그가 휘둘러보는 한 폭의
인물화다. 들고 있던 사상으로 내려친다. 바퀴벌레의 흰 내장이
바퀴벌레의 왼쪽 옆구리 밖으로 삐져나온다. 다리처럼 사상을 잘
게 끓이며. 나는 시효가 지나 버린 연극 초대권이다.
671시 524분 :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이
시작이나 될 수 있었겠는가?
999시 9996분 : 방바닥에서
999시 9997분 : 침으로 담뱃재를 찍어들고
999시 9998분 : 조심스레
999시 9999분 : 재떨이 앞으로 기어가며 나는
-- * --
*'누가두꺼비집을내려놨나', 민음사,1990, 헌 책방에서 구했는데
헌책의 좋은 점, 페이지 마다 뜻풀이를 찾아 놓았다.
* 장사익 좋아. 두툼한 손으로 치는 임동창의 피아노소리 좋아
집사람 애창곡
http://blog.daum.net/ham1002/7522687
*http://cafe.daum.net/youinwritings/42Oi/
안녕하세요~! 최철웅, 이승호가 함께 발표했던 패러디란 무엇인가? - 에서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던 각주 부분 다시 수정해서 올립니다 ^^ 더불어, 한 학우께서 수업시간에 질문하셨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장경린의 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패러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답변을 달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다솜 학우님~! ^_^그동안 시험이 많이 있어서;; 참;; 이렇게 늦게 답변을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말씀하신대로 장경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중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과 그 제목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에서 그리고,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확실히 장경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분명히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패러디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단, 그 제목에 있어서만 그렇다는 것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제가 발표 시간에 말씀드렸던 디지털의 논리가 들어간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는 그러한 주제의식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따라서 장경린의 시는 그 제목적 특성에서만 패러디를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루’에 주목하는 역사적인 시각이란 부분은 또한 패러디의 한 경향, 혹은 문학의 공시적 주류를 이루는 흐름의 한 경향으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자에 들어와 세계의 역사적 시각은 점차 거시적인 부분에서 미시적인 부분으로 그 논의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여,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대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마찬가지로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오규원 시인의 <시인 구보씨의 일일>, 그리고 영화에서도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폰부스>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의 일생 중에서 단 하루에만 주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작품들이 각각 어떠한 내용을 담아내고, 그러한 주제 의식이 어떠한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출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점차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로 미시한 세계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경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패러디 했는가의 문제로 돌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장경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제목만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패러디를 통해 그는 오늘날의 현대사회가 보여주는 미시적 관점의 한 경향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시적 관점의 역사의식과 제가 발표한 디지털이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특별한 결론을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제목의 차용이 패러디인지, 패스티쉬 인지, 혹은 몽타쥬적인 기법의 하나인지도 사실 아직 헷갈립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해보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하신 부분에 적절한 답변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또 더 물어봐주시기 바라겠습니다~!>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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