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책만 보는 주부

서예/법첩임서 107

전유암산가서(2008.12)

김생. 지금으로 풀이하면 김아무개라 할 수 있다. 그의 글씨가 종종 높이 평가되나 그의 글씨를 써 본 서예가라면, 또 오래 여러 법첩을 써 보았다면, 그의 글씨는 임모에 불과하거나, 그는 새기는 달인이었을 가능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희지의 법첩과 미세한 획의 특징 결구가 일치하며 집자를 하였으므로 연결성이 부족하다. 아마도 없는 글자는 연결성을 더해 써넣은 듯, 흐름이 어색하고 글자의 자형도 분위가가 이어지지 않을 정도로 특이한 것을 찾아 썼다. 안타까운 것은 사찰의 많은 비문이 작자는 다르지만 왕희지의 집자성교서 형태를 벗어나 자유롭게 쓴 것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서예/법첩임서 2011.10.08

왕탁증탕약망시,장입작성,서화수견,고적..(2007.5~ 2008.9)

탕약망(湯若望, 1591~1666)은 독일 쾰른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로 명말 청초에 서양의 역법을 중국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명 말 숭정 연간에 서광계 등이 서양 역법서들을 한역하여 『숭정력서』를 편찬하는 데 참여했으며, 청나라가 들어선 후 이것을 재정리해서 『서양신법력서』를 편찬했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해서 이전의 대통력이 시헌력으로 개력되었다. 1645년 무렵부터 흠천감의 책임자가 되어 신법인 시헌력의 시행을 이끌었다. 원명은 ‘Johann Adam Schall von Bell’이다. 탕약망사건-소위순치제독살사건 http://blog.daum.net/shanghaicrab/3416190

서예/법첩임서 2011.10.08

광개토대왕비(2007.11)

광개토대왕비는'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서예학과 석사논문으로훈민정음 서체와의  관련성을 찾아보았고관련 연구서와 논문을 도표로 만들어 명칭문제를 탐구하며후에 연구자료가 되고자 하였다. 이 글씨는 가분수 형태를 갖고 있고올바른 탁본 교재를 찾기가 무척 어럽다.우리나라의 다른 비석들도 우리나라에 흔한 화강암 재질로 된 것이 많아서 마모가 심해 그 역사성과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교습자료로 삼기가 무척 어렵다.떨어져 나간 획들을 추정해서 탁본을 수정해 서예교습 자료로 삼으니 오류가 많다. 깨끗하고 새까맣고 보기 좋은 교재는우선 버려야 한다.

서예/법첩임서 2011.07.25

홍차기효자비(2007.7)

https://portal.nrich.go.kr/kor/ksmUsrList.do?menuIdx=584 시대 조선 연대 1795년(정조19년) 유형/재질 비문 / 돌 문화재지정 비지정 크기 높이 95cm, 너비 47cm, 두께 17cm 출토지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소재지 (한국)성균관대학교 박물관-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3가 성균관대학교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이가환(李家煥) / 미상 / 미상 홍차기(1759~1772년)는 자가 양여로 교리 홍중현(洪重鉉 : 1660~1726년)의 손자요, 인보(寅輔)의 아들이다. 살인죄로 옥에 갇힌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충주와 서울을 왕래하며 신문고를 울리고 임금에게 호소하였다. 아버지는 목숨을 구했으나 결국 홍차기는 열네살로 죽고 말았다. 당대의 석..

서예/법첩임서 201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