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한자의 어원 - 한자문화만필, 저자 조선탁, 역자 송강호, 지식과교양, 2011
30 ~ 35쪽
'중국'이라고 할 때의 '國'자는 최초에는 지역`구역을 뜻하는 '域'이었다. 청말 문자학자인 서호徐灝는 그의 저서 '설문해자주전'에서 '봉토 강역을 '域'이라 하였다. 고대에는 '역或'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위囗'자가 더해져서 '國'자가 되었고 '土'가 더해져서 '域'자가 되면서 두 개의 다른 의미를 지닌 자로 구별되었다'고 하였다.
한자의 어원상에서 볼 때 國과 域은 최초에는 하나의 문자였으며 중국이라는 말은 최초에는 域中이라는 의미였다. 역중은 중국이라고 불렀으며 나머지 변경지역은 사이四夷 만이蠻夷 만맥蠻貊 등으로 불렀다.
'예기`중용'에 '그러므로 명성이 중국에 넘쳐서 만맥에까지 이르렀다'고 나오며 '시경`소아`유월`서' 한대 사람이 쓴 서문에서 ''소아'가 다 폐하게 되자 사이가 서로 침범하여 중국이 쇠미해졌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중국'은 '만맥'이나 '사이'와 서로 상대하여 부른 명칭으로 사방의 변경 지역과 대비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서 '辭源' 중국조 첫 번째 뜻풀이 항목에 '상고시대 중국 華夏 민족이 황하 일대에서 건국하여 천하의 중심에 거하였으므로 중국으로 부르고 중국을 둘러싼 기타 지역은 사방이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러나 세계 기타 지역이나 국가 간의 교류와 왕래가 확대됨에 따라 '중국'이라는 명칭은 단지 사이 만이 만맥 등과 대비해서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후한서`대진전' 권 88에 '그 사람들은 모두 장대하고 반듯해서 중국과 비슷하였으므로 대진이라고 하였다'고 나온다. 대진은 바로 오늘날의 이탈리아이다. 이것은 중국이라는 단어가 이미 유럽의 어느 한 국가와 대비되어 언급된 것으로 오늘날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우리나라를 중국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다만 정도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가 당나라 때 중국에 들어왔을 때 景敎라고 하였다. 당대 덕종 건중 2년(781)에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세워졌는데 또 한 차례 대진과 중국을 대비하여 거론하였다.
당대의 한유는 '논불골표'에서 '佛'이라는 것은 이적의 한 법입니다. 후한때부터 중국에 들어왔는데 옛날에는 일찍이 있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송대의 구양수는 '일본도가'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나라는 큰 섬에 거하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풍속이 좋았다... 徐福이 갈 때 '書'가 아직 불태워지지 않아 일실된 서 100편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중국에 전하는 것을 엄하게 금하여 세상에서 古文을 아는 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국을 일본과 대비하여 거론하였다.
청대의 민족 영웅 임칙서는 '영국 왕에게 알리는 격문'에서 '중국이 외국에 유행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중국이 외국에 판매하는 생산물은 사람이 사용하는데 어느 것 하나 이롭지 않은 것이 없지만 대영제국은 오해려 사람을 해치는 아편을 중국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언제나 세계 여타 국가나 지역과 대비하여 말한다는 것이다. 바로 근대의 학자 장태염이 '중화민국'에서 특별히 강조하여 '중국 땅에서 중국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영역을 가지고 이방과 대비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전에는 중국이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한어대사전''중국'조에 인용한 책은 앞에서 언급한 임칙서의 용례인데 이것은 연대가 매우 늦은 것이다. '辭海'의 '중국'조에는 '19세기 중엽 이래 '중국'이 비로소 우리나라 영토 전체를 가리키기 시작했는데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이는 정확한 인식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方선생이 고대에는 왕조의 명칭으로 국명을 하고 최근에 와서야 중국이라고 불렀다고 한 것 역시 비슷하지만 그릇된 견해이다. 호삼성은 말하기를 '한나라 때 흉노는 중국인을 진인이라고 불렀는데 당나라 및 국조國朝(元)는 중국을 불러 漢이라 했다. 예를 들면 한인 한아지류인데 모두 옛날을 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삼성은 원대 사람으로 그는 '중국'이라는 명칭을 한대 당대 그리고 그가 살았던 원대를 포함하여 가리켰다. 이는 틀리지 않다. 한 당 송대 등은 '중국'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어느 일정한 시대만을 한정하여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이 단어는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 양자의 뜻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최초에는 '역중'이라는 의미였다. '역중'이라는 말은 '사이'에 상대해서 언급하는 말 이외에 때로는 '사교四郊'에 대해서도 사용하였는데 이때는 '國都'를 가리켰다. '시경`대아`민로'에 '중국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방 각국을 안정시켰다'와 '사기`오제본기'에 '그런 연후에 중국으로 가서 천자의 지위에 올랐다' 등은 모두 이러한 예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고대의 그리스인 로마인 아라비아인의 저작 중에는 대부분 각각 자신들의 본토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는 것이다.(전종서, 관추편, 제 4책, 중화서국 1979년 1판, 1556쪽) 이로 보건대 본토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보는 것은 비단 중국민족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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