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然後知, 松栢之後彫(凋)
이 글귀를 처음 접한 것은 이무렵 '완당평전(유홍준, 학고재, 2002)'을 읽고부터이다.
아마도 이만큼 공부를 하면서 너무 늦게 안 추사 김정희와 세한도였다고 생각되었다.
후에 그 책이 많은 오류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추사가 완당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 말고도 그렇게 많은 호를 쓰는 줄 몰랐었고,
김정희를 추사체로 일컫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추사체를 흉내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붓글씨가 주로 행정용에서 예술로의 전환을 촉발하는데 큰 역할을하였음을..
이 책으로 인하여 내 안목이 갑자기 옆으로 넓혀졌다.
이 무렵은 문화환발이었다.
나라 전체가 책과 예술의 가치를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발휘할 만큼의 분위기였다.
당시 새마을문고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는 회원들이 날을 잡아 모두 모여
그동안 받아둔 구매희망도서 목록을 정리해 들고
다달이 주어지는 예산으로 한 번씩 대형서점으로 나가 책을 넘겨보고
외형과 내용을 다시한번 점검하여(문고에 꼽기 어려운 B4크기 확인 등)목록을 작성하고
문학 교양 자연과학 아동 예술 분야가 골고루 반영되도록 안배하는 회의를 했다.
서점 여러곳을 교섭하여 20만원 예산이지만 30%로 할인해서 공급해줄 수 있는
동네서점을 거래했다.
양심적인 그 서점은 정가 1백만원이 넘는 어린이 전집이 오랜 재고가 되어 키로로 샀다며
12권을 5만원에 사다 주기도 하셨다. 한국일보타임라이프에서 나온 입체서적이었다.
점심은 우리가 내는 회비로 했고, 차는 새마을문고에 와서 일회용으로 나누었다.
가까스로 완당평전 1, 2편을 사들였고 3편은 전문서로 평가되어 제외했다.
자원봉사 회원들은 새책을
가장먼저 권수 제한없이 볼 수 있도록 회장님이 허락하셔서
우리 아이는 한 달에 300권을 본 적도 있었다.
책을 잘 읽는다고 대출허용 권수 3권보다 많은 10권 내외로 빌려주시는바람에
새마을문고 자원봉사자로 감사히 활동에 나섰다.
낑낑대며 책을 들고 와서는 읽다가 한두권 맘에 드는 책은 사달라고 졸랐다.
안사주고 버티다가 반납기일이 다가오면
양 손 검지 두 손가락을 이용해서
책 한번 자판 한번 화면 한번...을 오가며 동화책을 컴에 입력하고 있었다.
사줄 수 밖에...
비바람폭풍우를 헤치고 스승이 기뻐할 책을 꾸려들고 배를 타고 멀미해가며 가는
제자 이상적의 모습을 상상하며 눈물겨웠다.
내게 세한도는 구도나 그림의 가치를 논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 그림에서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 또한 위대한 분들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이때부터 나는 많은 분들께 이 글귀의 부채를 선물했다.
남아 있는 것은 그 다음 해 여름부채이다.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彫(凋)
대부분의 표점은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라 하고 있지만
나는 5언의 이 표점이 입에 익었다.(간혹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 표점도 있다.)
지송백 지후조로 읽으면 같은 '지' 글자로 알 우려가 있고, 뒤에도 같은 명사로 이해하게 된다.
날씨가 차가와지면 알게 되나니, 송백은 시듦이 뒤떨어지는 것을
처음 접한 한자는 새길 조(彫)였으나 시들 조(凋)와 같은 뜻으로 쓰이므로 꼭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는 말이 나온다.
~擧世混濁,淸士乃見。(거세혼탁 청사내현 : 세상이 혼탁하면 청렴한 선비가 드러난다.)
見 볼 견, 뵈올 현, 관의 천
1.(볼 견)a.보다b.보이다c.당하다(當--)d.견해(見解)e.볼견(-見: 부수(部首)의 하나)
2.(뵈올 현)a.뵙다b.나타나다c.드러나다d.보이다e.소개하다(紹介--)f.만나다g.현재h.지금
3.(관의 천)a.관의(棺衣: 시체를 넣은 관을 싸는 천)
매정 민경찬 선생님의 그림과 여초 김응현 선생님의 글씨로
서예잡지 부록이 온 적이 있었다. 해세로 보면 1997년도이다.
매정선생님의 소나무그림과 소나무 아래 조릿대 그림은 오래도록 선망하는 그림이다.
따라해보려고 소나무를 그려보았지만
문인화의 기본도 모르고 그렸던 것 같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문인화에서는 어린가지를 묵은 가지보다 앞으로 낸다.
젊은 친구들을 존중하고 앞길을 터주는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소나무그림 두 점은 빵점이다. 다시 그려야겠다.
관련 글귀가 몇 있다.
1. 枇杷晩翠, 梧桐早凋 ;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푸르르고 오동은 먼저 시든다.
2. 봄 계수나무와의 문답(春桂問答 二)
왕유
봄 계수나무에게 묻되 복숭아꽃 오얏꽃 아름답게 피어 있네.
햇빛이 이르는 곳마다 가득한데 무슨 일로 홀로 꽃이 없는가.
봄 계수나무 대답하되 봄꽃이 어찌 능히 오래가랴.
바람과 서리에 잎 떨어질 때에 나 홀로 빼어남 그대는 아는가.
問春桂호되 桃李正芳華라
年光隨處滿커늘 何事獨無花오
春桂答호되 春華詎能久오
風霜搖落時에 獨秀君知不(否)아(한국고전번역원 동양고전DB)
지금은
산에 가면 계수나무를 찾아본다.
광릉수목원 입구에서 계수나무 푯말을 발견했을 때 그 의미를 겨우 알 수 있었다.
숲에서도 꼿꼿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는 계수나무는 유심히 보면 바로 찾을 수 있고
그 품위는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嗚呼!士窮乃見節義。"(오호! 사궁내현절의 )
한유가 쓴 유종원 묘지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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