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가 너무 좋다.
10월 4일 - 1004 - 천사다. 인내심을 못이기고 냈다.
그래도 될 것 같다.
龍을 찾았다.
2019년부터 내곁에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좋다고만 지니고 쓸 줄을 몰랐었다.
한 줄이 용이 되어 날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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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夫潛神對奕(1), 猶標坐隱(2) / 之名, 樂志垂綸(3), 尙體行藏(4)之趣. 詎若功宣(5)禮樂, 妙擬神仙. 猶挺(6)埴之罔窮, 與工鑪(7)而並竝運.
好異尙奇之士, 翫體勢之多方, 窮微測妙之夫, 得推移之奧賾(1), 著述者假其糟粕, 藻鑒(2)者把其菁華(3), 固義理(4)之會歸, 信賢達(5)之兼善者矣. 存 / 精寓賞, 豈徒然與(6).
【해석】
온 정신을 기울여 바둑을 두는 것도 오히려 ‘좌은’이라는 이름으로 표방할 수 있고, 뜻을 즐겨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도 오히려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의취를 몸소 보여줌이다. 어찌 예악을 펴는 공과, 신선을 견주는 오묘함과 같겠는가? 오히려 점토를 이겨 그릇에 궁구하고 대장장이가 야금을 하는 것을 아울러 운용하는 것이 뛰어나다.
기이함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선비는 형체와 필세의 다방면을 가지고 놀 수 있고, 미묘함을 궁구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서예 변천의 정미한 뜻이 쌓인 것을 얻을 수 있다. 저술하는 이는 서예의 찌꺼기를 빌릴 수 있고, 품평과 감별하는 이는 정화를 잡을 수 있다. 도리의 귀결은 확실히 현명하고 통달한 이가 겸하여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미함을 남기고 감상을 깃들임은 어찌 쓸데없는 것이겠는가?
【주석】
(1) 對奕(대혁) : 묵적본ㆍ사고본에ㆍ이현사에는 ‘奕’, 호남본에는 ‘弈’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대혁(對奕)은 바둑을 대국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설용약은 『집이기ㆍ부계원』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개화방에 이르러 말을 찾아 병부 한시랑과 함께 바둑을 대국하였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주밀은 『운연과안록』에서 “옛날 그림 두 점이 있다. 하나는 <오정개산>이고, 다른 하나는 <제선대혁>이다.”라고 하였다.
(2) 坐隱(좌은) : 세상을 떠나 은거하며 바둑으로 자신의 흉중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바둑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남조 송나라 유의경은 『세설신어ㆍ교예』에서 “왕탄지(王坦之, 330-375 從事中郎을 지냈음)는 바둑을 좌은으로 삼았고, 지둔(支遁, 314-366 세칭 支公)은 바둑을 수담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황정견은 「혁기」에서 “좌은은 암혈의 즐거움을 모르고, 수담은 속인과 함께 말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였다.
(3) 垂綸(수륜) : 낚싯줄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삼국시대 위나라 혜강은 「형수재공목인군증시」에서 “강은 흐르고 언덕은 평평한데 긴 하천에 낚싯줄을 드리우네.”라고 하였다. 강태공은 아직 벼슬을 하지 않았을 때 위수에서 낚싯줄을 드리운 이후 ‘수륜(垂綸)’을 은거로 비유하였다. 진나라 갈홍은 『포박자』에서 “그러므로 옻나무 동산에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재상의 귀함을 돌아보지 않았으며, 잣나무를 이루고 보습을 잡으며 제후의 높음을 대수롭게 않게 여겼다.”라고 하였다.
(4) 行藏(행장) : 나아가거나 물러남을 가리키는 말로 벼슬을 하거나 은거함을 뜻한다. 『논어ㆍ술이』에서 “등용하면 도를 행하고, 버리면 도를 감춘다.”라고 하였다. 진나라 반악은 「서정부」에서 “공자는 때를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났으며, 거백옥은 나라와 함께 나아가거나 물러났다.”라고 하였다.
(5) 묵적본ㆍ이현사에는 ‘宣’, 사고본ㆍ호남본에는 ‘定’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6) 묵적본에는 ‘挻’, 이현사에ㆍ호남본에는 ‘挺’, 사고본에는 ‘埏’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설문해자』에서 “연(挻)은 늘이는 것이다. ‘手ㆍ延’이 구성요소이다.”라고 하였는데, 왕염손은 “연(挻)은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노자는 점토를 부드럽게 하여 기물을 만들고, 하상공은 ‘연(挻)’은 부드럽게 하는 것이고 점토이다. 흙을 부드럽게 하여 음식의 기물을 만든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순자ㆍ성악편』에서 “도공은 점토를 두드려 기와를 만든다.”라고 하였는데, 주에서 “연(埏)은 음이 단이고 두드리는 것이다. 식(殖)은 점토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挺’과 ‘埏’은 통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묵적본ㆍ사고본에ㆍ이현사에는 ‘鑪’, 호남본에는 ‘爐’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1) 奧賾(오색) : 정미한 뜻이 쌓인 것을 뜻한다. 『진서ㆍ원헌전』에서 “두 어진 이는 비록 정미한 뜻을 다하였더라도 이 후생을 꺼리거나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구당서ㆍ방기전ㆍ일행』에서 “윤숭은 크게 놀라며 일행과 함께 정한 뜻이 쌓인 것을 말하다가 매우 감탄하여 엎드렸다.”라고 하였다.
(2) 藻鑒(조감) : 품조(品藻)와 감별(鑑別)의 준말이다. 당나라 유우석은 「상문하무상공계」에서 “품평과 감별 아래 누추한 용모를 숨기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전등여화ㆍ경노전』에서 “특별히 두 생원을 불러 선배에서 잘 품평하고 감별하는 이를 청하여 몰래 숨어서 엿보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
(3) 菁華(청화) : 정화(精華)로 『상서대전』에서 “정화가 이미 고갈되었으니, 이제 나는 치마를 벗고 물 건너가련다.”라고 하였다. 『진서ㆍ문원전서』에서 “『한림』은 정화를 모았고, 『전론』은 품평의 현란함을 자세히 하였다.”라고 하였다.
(4) 義理(의리) : 일정한 윤리도덕의 행위와 규칙에 합하는 것으로 도리와 같은 말이다. 『한비자ㆍ난언』에서 “그러므로 도량이 비록 올바르더라도 반드시 들을 필요가 없다. 도리가 비록 온전하더라도 반드시 사용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다.
(5) 賢達(현달) : 현명통달(賢明通達)의 준말로 재능과 덕행이 있고 명성이 있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후한서ㆍ황헌전』에서 “태수 왕공은 고을에서 예의로 현명하고 통달한 이에게 나아가니 대부분 항복하였는데 끝내 황헌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
(6) 묵적본ㆍ사고본에ㆍ이현사에는 ‘與’, 호남본에는 ‘歟’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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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급강하하고
버벅대던 디카가 눈을 뜨고도 껌껌하다. 간신히 두 장을 찍는데 찍힌 줄 알았는데 안찍혔다.
내 손의 온기로 잠시 두 장을 찍어냈다. 보내야 하나.
새로 확보한 디카와 친해지려고 만지작거리지만 아직 낯설다.
광복 이전 '한글'지의 학술적 성과
실천 분야 학술대회는 오후에 이어지고 오전에는 연구 분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한글로만 투고하라 하고 한자를 예외조항으로 둔 투고규정이라서 망설인 곳이다.
오늘 발표는 연구대상이 한자세대라서 한자를 당연하게 편안하게 혼용하여 진지함을 더해 한글학회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면을 걷어냈다. 그렇다면 실천분야의 분들은 연구분야의 심사에서 배제되어야 하지 않나?
최현배 선생은 특히 실천 운동가라기보다는 한글의 수리적 과학적 학술 연구가로
이날 학술대회에서도 그분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연구분야의 논의 발표가 어려움을 알 수 있다.
학교때부터 학교 학술지에 논문을 계속 내시던 선배가 있다.
어느새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 분야에서는 드물게,
눈에 띄게 체계있고 논리적인 교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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