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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29 - 천리마는 있는데...

雅嵐 2024. 12. 27. 14:22

학계 원로들이 하나 둘...

점점 안계시는 안타까움을 말씀드렸다.

 

정우상샘께서는

'명마를 보는 눈이 뛰어났던 주나라의 인물 백락이 죽고 나니

천리마는 한 번 달려보지도 못하고 천리마인지도 모르고 마굿간에서 여위어갔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찾아보니

韓愈의 雜說에 나오는

千里馬常有而白樂不常有(천리마상유, 백락불상유)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유(韓愈)의 〈잡설(雜說)〉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다음에야 천리마가 있게 된다.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지 않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가 있어도 노예들의 손에 곤욕을 치르면서

마구간에서 여위어 죽어가니 천리마로 일컬어지지 못한 것이다.

천리를 가는 말은 한 번에 혹 한 섬 곡식을 다 먹기도 하는데,

말을 먹이는 자는 그것이 천리를 갈 수 있어서 먹는 줄을 알지 못한다.

이 말이 비록 천리를 갈 능력이 있다 해도

먹은 것이 배부르지 않아  힘이 부족하여,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또 보통의 말들과 같고자 하여도 역부족이거니,

어떻게 천리를 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而伯樂不常有

故雖有名馬 秖辱於奴隷人之手 騈死於槽櫪之間 不以千里稱也

馬之千里者 一食或盡粟一石 食馬者 不知其能千里而食也

是馬也雖有千里之能 食不飽 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 不可得 安求其能千里也.

 

-------------------------------서보

 

원문

當仁者,(1) 得意忘言,(2) 罕陳其要. 企學者, 希風, 雖述猶疎(3). 徒立其工, 未敷厥旨(4). 不揆庸昧(5), 輒效所明. 庶欲弘旣往之風規(6), 導將來之器識(7), 除繁去濫, (8)迹明心者焉.

(1)有筆陣圖(2)七行. 中畵執筆三手, (3)貌乖舛, 點畫湮訛. 頃見南北流傳, 疑是右軍所製. 雖則未詳眞僞, 尙可發啓童蒙. 旣常俗所存,  / 不藉編錄.

 

해석

서예의 오묘한 비결을 얻은 이는 뜻을 얻고 말을 잊으니, 요령을 진술하는 이가 드물다. 배움을 바라는 이는 이전 서예가의 서풍을 희구하며 절묘함을 펼쳐내지만 오히려 허술하다. 헛되게 공교함만 세우고 아직 그 종지를 진술하지 못하였다. 나는 자질이 우둔하고 재주와 학식이 천박하며 비루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문득 힘을 다하여 분명히 하고자 한다. 기왕의 풍모와 품격을 넓히고 장래의 기량과 식견을 인도하며, 번거롭고 쓸데없는 것을 제거하여 자취를 보고 마음을 밝게 하고자 함을 바란다.

세속에 필진도7행이 있다. 중간에 붓을 세 손가락으로 잡은 그림이 있다. 그림의 모양은 어그러졌고, 점과 필획은 막히고 그릇되었다. 최근 남북에서 유전하는 보니, 아마도 왕희지가 지은 것 같다. 비록 아직 진위를 자세히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어린 초학자를 계발시킬 수 있다. 이미 세속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편집하여 기록할 필요가 없다.

 

주석

(1) 當仁者(당인자) : 논어위령공에서 인에 당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당인자(當仁者)’는 여기에서 위에서 말한 서예의 오묘한 비결을 장악한 사람 혹은 서예에서 큰 성취를 이룬 사현(四賢, 종요장지왕희지왕헌지)을 가리킨다.

(2) 得意忘言(득의망언) : 장자의 철학으로 미학 명제의 하나이다. 장자외물에서 통발이라는 것은 물고기에 있는 까닭에 물고기를 얻고 통발을 잊는다. 올무라는 것은 토끼에 있는 까닭에 토끼를 얻고 올무를 잊는다. 말이라는 것은 뜻에 있는 까닭에 뜻을 얻고 말을 잊는다. 내가 어찌 말을 잊은 사람과 함께 말할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장자천도에서 말의 귀한 것은 뜻이다.”라고 하였다. 장자는 뜻을 말보다 중시하였다. 주체와 객체, 창조자와 감상자, 표현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에 대해 말하면, 뜻을 창조하여 표현하고 이를 깨달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첫 번째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오직 뜻을 얻기만 하면 말은 망각할 수 있다. 서보에서는 장자의 말을 인용하여 서예 창작에서 오직 정감 표현의 만족함을 얻으면 기타 필묵 형식과 법도는 모두 던져버릴 수 있음을 표명하였다. 이는 손과정 서예미학의 가장 높은 서정 철리이다.

(3) 묵적본사고본이현사에는 ’, 호남본에는 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는 같은 글자이다.

(4) 敷厥旨(부궐지) : ‘()’는 진술하는 것이니, 남조 양나라 유협은 문심조룡서지에서 글을 선별하여 편장을 정하였고, 이치를 진술하여 계통을 들었다.라고 하였다. ‘()’()와 같은 대명사이고, ()는 종지취지를 뜻한다.

(5) 揆庸昧(규용매) : ‘()’는 헤아린다는 뜻이니, 한서동중서전에서 공자는 춘추를 지을 때 위로 천도를 헤아렸고, 아래로는 인정에서 물었다.”라고 하였다. ‘용매(庸昧)’는 자질이 우둔하고, 재주와 학식이 천박하며 비루함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스스로 겸손하게 낮추는 말로 사용한다.

(6) 風規(풍규) : 풍모와 품격이나 문예 작품의 풍격을 가리키기도 한다. 송서장부전에서 사도고좌장사 장부는 곧은 마음과 간결함을 세워 어려서 풍격을 수립하였다.라고 하였다.

(7) 器識(기식) : 기량과 식견으로 신당서배행검전에서 선비가 심원함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기량과 식견을 먼저하고 문예를 뒤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8) 묵적본사고본이현사에는 ’, 호남본에는 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의 간자이다.

 

(1) () : ‘()’와 같으나 당 태종 이세민의 휘인 ()’자를 피한 것이다.

(2) 筆陣圖(필진도) : 위부인이 짓고 왕희지가 썼다고 전한다. 이에 대한 진위는 서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였다. 역대로 이를 위작이라 여기는 것은 대부분 문장의 풍격과 내용에서 단정한 것이다. 즉 마음에서 깨달았다는 진리를 운용함에 그릇됨이 있어 근거로 삼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부인은 위삭(衛鑠, 272-349)으로 자가 무의(茂漪)이고 위항(衛恒)의 조카이며 여음태수 이구(李矩)의 아내이다. 하동안읍(河東安邑, 지금의 산서성 夏縣의 북쪽) 사람이다. 위삭의 서예는 종요를 계승하였다. 종요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청하자 종요는 그녀에게 해서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위삭은 열심히 공부하여 글씨가 규범적이고 단정함에 이르러 해서의 필법을 묘하게 전하였다. 당시 위삭의 명성은 대단하여 왕희지도 어린 시절에 위삭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삼아 서예를 배웠다. 작품으로 <급취장><계수화남첩>이 있다.

(3) 묵적본이현사호남본에는 三手圖’, 사고본에는 圖手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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