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끝이 붉어지면 봄이 오는겨...
엄마가 나뭇가지를 보면서 말씀하신다.
그러고보니 가지끝 20센티쯤이 모두 붉다. 새들도 많이 찾아 온다.
글씨나 쓰고...
글씨도 쓰고...였으면 좋겠는데
음의 기운이 오르며 양으로 가는 입춘도 지나고
두 강한 효가 서로 깨물려 서합하는 대보름도 지났건만
하나의 양의 기운은 언제나 완성될지 모르겠다.
글씨나 쓰려니
'행동하는 양심'이 자꾸 꿈틀대며 부끄럽게 한다.
이렇게 속수무책인 때가 있었을까.
가게마다 노란 임대가 너풀거리고 을씨년스럽게 비고
그곳에서 노력하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파트도 하나둘 빈 집은 늘어나고
지으려고 부수기만 해둔 땅들은 여기저기
~나 하고 있는 더 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날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도 그랬었다.
뒤에 앉은 책임자 분은 늘 피곤한 얼굴로 출근해서는...
"조국의 장래가 걱정되어 잠을 못이루겠다." 고정 멘트였다.
아무것도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글씨나 쓰고 있자니...
【원문】
豈有貽謀令嗣, 道叶義方, 章則頓虧, 一至於此. 又云, 與張伯英同學, 斯乃更彰虛誕. 若指漢末伯英,(1) 時代全不相接. 必有晉人同號, 史傳何其寂廖. 非訓非經, 宜從棄(2)擇.
夫心之所達, 不易盡於名言(1), 言之所通, 尚難形於紙墨(2). 粗可髣髴其狀, 綱紀其辭. 冀酌希夷(3), 取會佳境. 闕而未逮, 請俟將來.
今撰執使轉用(1)之由, 以祛未悟. 執謂深淺長短之類是也, 使謂從(2)橫牽掣之類是也
【해석】
아들에게 주는 것은 도에 맞게 의가 반듯해야 하는데, 어찌 문장은 둔해 어그러져 하나로 이에 이르고 있는가.
또한 장백영과 동학이라니, 이는 더욱 황당함을 드러낸다. 만약 한말의 백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시대는 전혀 서로 한데 닿지 않는다. 반드시 진나라 사람에 같이 부르는 이가 있을 것이나 역사와 전기에 찾아볼 수 없다. 『필세론』은 가르침도 아니고 법도도 아니니, 마땅히 택하는 데서 빼야 할 것이다.
마음에서 통달한 것은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로 다하기가 쉽지 않다. 말로 통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종이와 먹에 나타내기 어렵다. 대략 형상을 비슷하게 할 수 있고 그 말을 기강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현묘한 경지를 짐작하여 아름다운 경지를 취하여 이해하기 바란다. 빠트려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은 후학들의 연구와 보충을 기다린다.
지금 집사전용을 찬하는 까닭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일소하기 위함이다. ‘집’은 붓 잡는 것이 깊고 얕고, 길고 짧은 유형을 일컫는 것이다. ‘사’는 종횡으로 끌어당기는 유형을 일컫는 것이다.
【주석】
(1) 묵적본에는 이하 166자가 없어졌다.
(2) 이현사ㆍ호남본에는 ‘棄’, 사고본에는 ‘集’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1) 名言(명언) :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이나 널리 알려진 말을 가리킨다.
(2) 이현사ㆍ호남본에는 ‘墨’, 사고본에는 ‘筆’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3) 希夷(희이) : 공허하고 고요하며 소리나 색깔이 없는 그윽하고 묘한 경지를 가리킨다. 『노자』에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라 한다.”라고 하였다.
(1) 執使轉用(집사전용) : ‘집(執)’은 집필이고, ‘사(使)’는 운필이며, ‘전(轉)’은 전절이고, ‘용(用)’은 점과 필획의 결구와 안배를 가리킨다. 청나라 송조는 『서법약언ㆍ답객문서법』에서 “객이 송조(호는 사릉자)에게 ‘글씨를 쓰는 법도에 이른바 ‘집’이 있는데,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송조는 ‘얕거나 깊음은 마땅함을 얻고, 길거나 짧음은 모두 적합함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하였다. ‘그 다음 ‘사’라 일컫는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종횡으로 어지럽지 않고, 끌어당겨도 구속받지 않음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하였다. ‘다음 ‘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갈고리와 고리는 어그러지지 않고, 에워싸며 굽은 것은 서로 이어짐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하였다. ‘다음은 ‘용’이라 일컫는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하나의 점은 나뉘어 서로 등지고, 하나의 필획은 일으키거나 엎어짐을 변별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하였다.”라고 하였다.
(2) 이현사에는 ‘從’, 사고본ㆍ호남본에는 ‘縱’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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