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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 백고선생 시 화중에게

雅嵐 2023. 1. 15. 13:29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용재총화 제4ⓒ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김용국 이지형 (공역) | 1971,  연려실기술ⓒ 한국고전번역원 | 이일해 이식 (공역) | 1966, 육선생 유고ⓒ 한국고전번역원 | 조동영 (역) | 1999, 해동잡록ⓒ 한국고전번역원 | 윤혁동 (역) | 1971에 있음.

 

 세종께서 처음으로 집현전을 설치하여 문학하는 선비들을 불러놓고, 조석으로 불러 물으시면서도 오히려 문학이 진작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그래서 다시 그 중에서도 나이 젊고 총민한 자를 골라 절에 들어가 책을 읽게 하시고 뒷바라지하기를 심히 풍성하게 하였다. 정통(正統) 임술(壬戌), 평양(平壤) 박인수(朴仁叟 박팽년)고령(高靈) 신범옹(申泛翁 신숙주)한산(韓山) 이청보(李淸甫 이)창녕(昌寧) 성근보(成謹甫 성삼문)적촌(赤村) 하중장(河仲章 하위지)연안(延安) 이백옥(李白玉 이석형)이 명을 받들어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서 독서할 때, 학업을 매우 부지런히 하여 시문을 지어 서로 주고받기를 쉬지 않았다.

 

 집현전의 여러 학사(學士)들이 상사일(上巳日)에 성남(城南)에서 놀 때 나의 화중(和中)씨도 참여하였다. 화중씨가 새로 급제하여 문명이 있어 맞아 간 것이다. 학사들이 운자(韻字)를 나누어 시를 짓자 화중씨도 남() 자 운으로 시를 짓기를,

 

연참으로 몇 해 동안 병이 나서 견딜 수 없었더니 / 鈆槧年來病不堪

춘풍이 흥을 끌어 성남에 이르렀도다 / 春風引興到城南

볕 드는 언덕의 방초는 가늘기가 짠 것과 같으니 / 陽坡芳草細如織

이야말로 봄이요 3 3일이로다 / 正是靑春三月三

하니, 여러 학사들이 붓을 놓고 시를 짓지 못했다

 

 제학(提學) 이백고(李伯高)와 박사(博士)가 된 성화중(成和仲 ())이 함께 옥당(난파鑾坡)에 있으면서 백고가 연구(聯句)를 지어 이르기를,

 

옥당에 봄볕 따뜻하여 해 비로소 길어지니 / 玉堂春暖日初遲

남창에 기댄 잠이 백치를 기르도다 / 睡倚南牕養白痴

우는 새 몇 소리 낮 꿈을 놀래키고 / 啼鳥數聲驚午夢

살구꽃 고운 웃음 새 시에 들어온다 / 杏花嬌笑入新詩

하니, 성화중이 차운하여 말하기를,

 

어린 제비 우는 비둘기에 낮 시간 길어지고 / 乳燕鳴鳩晝刻遲

태액(궁중의 못)에 봄날은 찬데 버들은 얼빠진 듯 / 春寒太液柳如痴

옥당에서 잠을 깨니 나머지 일이 없어 / 鑾坡睡破無餘事

이따금 만전(고려전(高麗牋))을 펼쳐서 작은 시를 쓴다 / 時展蠻牋寫小詩

하였다

또 장의동 조지서(造紙署)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기생 수명과 스님 수명이 있었다. 제공이 모두 시를 지을 제, 화중이 또한 글을 짓기를,

 

꽃이 있고 술이 있고 또 산이 있으며 / 有花有酒仍有山

손도 기뻐하고 주인도 기뻐하며 스님도 또한 기뻐하도다 / 賓歡主歡僧亦歡

취한 뒤에 두 귀가 붉어짐을 사양하지 아니하니 / 不辭醉後兩耳熱

떨어지는 폭포 낯을 스쳐 사람을 차게 하도다 / 飛泉洒面令人寒

하니, 백고가, “‘사람을 차게 하도다[令人寒]’ 소리소리 모두 차도다[聲聲寒]’라고 고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개(李塏, 1417~1456)

자는 청보(淸甫)백고(伯高), 호는 백옥헌(白玉軒)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충신 색()의 증손이다. 20(세종18)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정자(正字)에 제수되었고 25세에는 집현전 저작랑(著作郞)으로 박팽년, 이선(李宣)과 함께 명황계감(明皇戒鑑)을 편찬했다. 29세에는 성삼문과 함께 문과 중시에 급제했고, 같은 해에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했다. 34(문종1)에는 세자시강원 문학(文學), 집현전 응교(應敎)에 제수되었다.

그는 숙부인 이계전(李季甸)이 수양대군의 편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충절을 지켜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참화를 당했다. 그는 국문장(鞫問場)에서, 지극히 섬약한 체질이었으나 불로 지지는 형벌에도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장(刑場)에 나가면서 지었다고 하는 시 한 수에 그의 일생의 삶의 자세가 응축되어 있다.

 

우정처럼 중할 때는 사는 것도 크거니와 / 禹鼎重時生亦大

홍모처럼 가벼울 때는 죽는 것이 영광이라 / 鴻毛輕處死猶榮

새벽까지 잠 못 이루다 문을 나서 떠나가니 / 明發不寐出門去

현릉에 우거진 송백들이 꿈결 속에 푸르네 / 顯陵松柏夢中靑

 

숙종 때 복관되었으며 영조 때 이조 판서로 추증되고 충간(忠簡)의 시호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