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是知逸少之比鍾張, 則專博斯別, 子敬之不及逸少, 無或(2)疑焉.
2-1
余志學之年(1), 留心翰墨(2), 味鍾張之餘烈(3), 挹(4)羲獻之前規, 極慮
【해석】
이것으로 볼 때,
왕희지는 종요 장지에 비해 한결같은 깊이의 차이가 있고,
왕헌지가 왕희지에 미치지 못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알 수 있다.
2-1
나는 15살에 서예에 마음을 두어,.
종요 장지가 남긴 걸작을 음미하였고,
왕희지 왕헌지의 예전 법식을 끌어쓰기에 온갖 궁리를 다하였으며~
【주석】
(2) 묵적본ㆍ이현사ㆍ호남본에는 ‘或’, 사고본에는 ‘惑’이라 쓰고 아래에 ‘改作或’이라 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전자를 따른다.
2-1
(1) 志學之年(지학지년) : 소년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논어ㆍ위정』에서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2) 翰墨(한묵) : 필묵으로 넓게 서화와 문장을 일컫는데, 여기에서는 서예를 가리킨다.
(3) 餘烈(여열) : 역사적으로 남긴 공적이나 업적을 일컫는데, 여기에서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가리킨다. 한나라 가의는 「과진론」에서 “진시황에 이르러 여섯 임금의 남긴 공적과 장구한 계책을 떨쳐서 우주 안을 다스려 동주ㆍ서주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켰다.”라고 하였다.
(4) 挹(읍) : 말이나 사례를 끌어대어 인용하여 증명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신당서ㆍ왕탁전』에서 “많은 재능과 착실한 선비를 취하는 것을 세상에서 당기는 것이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以와 比의 초서 흘림은 비슷하지만 세로획 두 개를 더 강하게 쓴 것은 比이다
以와 비슷하지만 수평을 많이 깨고 넓이가 더 자유로운 흘림은 心이다.
종요 장지 일소 자경... 은 잘쓸 때까지 계속 나오려나보다.
疑.... 다음엔 외어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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