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자방고전 풀이

책만 보는 주부

서예 315

새해 해맞이의 정체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 고전산문 - 사백여덟 번째 이야기 2016년 1월 4일 새해 해맞이의 정체 [번역문] 화비령(火飛嶺) 남쪽에 정동(正東)이라는 곳이 있다. 동해 바닷가의 작은 산이다. 산은 모두 바위이고, 산의 나무는 모두 소나무이다. 춘분(春分)에 동쪽을 바라보면 해가 정중앙에서 뜬다. 옛날에 동해 신령의 사당이 있었으나 오래전에 양양(襄陽)으로 옮겼다. 산이 기이하고 험준하며 신령이 있는데, 나무 한 그루라도 베면 온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 마을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며 전염병이 돌면 기도를 드린다. [원문] 火飛南, 有地名正東者, 蓋東海上小山. 山皆石, 山木皆松, 春分東望, 日出正中. 古有東海神祠, 中古移祠於襄陽. 山奇峭有神, 伐一樹則一村有災, 鄕人神事之, 凡疾疫有禱焉. - 허목(許穆, 1..

제 37회 국제서법예술연합 전국 휘호대회 - 창작 노트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5A_1360_010_0420_2002_010_XML 고전번역서 > 동문선 > 속동문선 제6권 > 오언율시 > 하처 추심호(何處秋深好) 김시습(金時習) 그 어떤 곳이 가을 깊어 좋은가 / 何處秋深好 고기잡이 마을에 8ㆍ9 집 있다 / 漁村八九家 맑은 서리는 감나무 잎을 밝히고 / 淸霜明柿葉 푸른 물결은 갈대꽃에 출렁인다 / 綠水漾蘆花 구불구불한 대 울타리 그 밑에 / 曲曲竹蘺下 비뚤비뚤한 이끼 길이 멀어라 / 斜斜苔徑賒 서쪽 바람에 낚싯배 한 척 / 西風一釣艇 연기와 놀을 따라 돌아가더라 / 歸去逐煙霞 그 어떤 곳이 가을 깊어 좋은가 / 何處秋深好 가을이 깊은 은사의 집이어라 / 秋深隱士家 새로 얻은 시는 낙엽에 적고 / 新詩題..

'자방고전', 논문을 제출했다.

내 '자방고전' 논문의 기~인 여정 易은 생각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 죽은듯 감응도 없다가 느끼며 잇따라 통하니 하늘아래의 연고로 세상에서의 지극한 근기가 아니면 그 누가 이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 周易 繫辭 上 (易, 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 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有志者事竟成(유지자사경성) 뜻을 품은 사람은 마침내 일을 이룬다. 1974년 성균관대학교를 나오신 이명호선생님께 한문을 배우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가기로 했다. 선생님 성함 중에 잘 쓰지 않는, 처음 보는' 하늘 昊' 한자가 신기해서 자꾸 써보곤 했다. 1977년 서예를 시작했다. 효천 김인석선생님. 구양순체만 글씨라고 하셨다. '새벽 曉, 클 奭'을 처음 만나 자꾸 써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거르..

서예/자방고전 2019.11.05

일제강점기 엄마의 기록 - 센님바리(千人針)를 뜨다/ 홍윤표 천자문(千字文) 강의

교동국민학교 --> 전동국민학교 아마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3~1944년 쯤일 것이다. 목면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어깨부터 허리춤까지 대각선으로 묶는 것이 있었다. (여학생들은 허리에 둘러 메었다.) 도시락이나 책, 소지품을 놓고 둘둘 말아 둘러메는 것이었다. 하학길에는 걷는대로 뛰는대로 빈 도시락 속에서 숟가락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중에는 그것이 센님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린 아들이 소집을 당하면 그 엄마는 눈물에 눈이 퉁퉁 불어 센님바리에 빨간 십자수('가께-X'라고 했다)를 하나씩 떠달라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부탁했다고 한다. 천 명의 사람에게 센님바리(천인침)를 받으면 그것이 총알을 막아주어서 무사히 아들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한 번 떠난 아들들은 돌아오는 경우가 ..

서예/자방고전 2019.08.12

교실에서 쫒겨난 한자와 서예교육-학정 이돈흥(월간서예 2019.3월호에서)

서예진흥법 국회 통과에 즈음하여교실에서 쫒겨난 한자와 서예교육 .. "대중의 고전화!!!"(사회지도자들이 四字成語 쓰기를 좋아하되, 한문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현상) 학정 이돈흥 - 월간서예 2019. 3월호 77면- 2018년 11월 서예 진흥에 관한 법률(서예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2019년 6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안다. 서예술이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서예진흥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지만, 모든 서예인이 힘을 모으고 비서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홀딩스의 홍석현 회장, 최재천 변호사, 유성엽 국회의원 등등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예진흥법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

서예/자방고전 2019.03.14

여초 김응현

여초 서예관 http://yeochomuseum.kr/ 正法을 찾는 서예가 如初 김응현(뜻이 제대로 서야 붓도 설 수 있습니다) *1985년 여성동아 인터뷰(글.김명숙/사진.권부문기자) 기록 *여초 김응현 약력 -1926년 서울 번동 출생 -아호.여초(如初), 무외헌(無外軒), 배석장실(拜石丈室), 완옹(頑 완고할 완, 翁 어르신 옹) 등.. (이건 제 의견 : 그리고 돈옹(頓翁)을 쓰시는 데, 頓은 두가지 뜻이 있더군요. 연세가 더해가시면서, 겸손함으로 '조아릴 頓', 아래 기사를 읽다 보면, 서예기법으로 '붓 끝에 힘을 주어 빳빳하고 굳세게 눌러 긋는 법의 頓'으로 선생님의 필법을 의미한 두 가지 뜻으로 쓰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초'를 두가지 의미에서 쓰신 것처럼요.) ---------------..

2014년 10월 11일 후 4년

꼬박 4년 걸려 논문이 하나 완성되었다. 폭염 뒷머리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푸욱 적셔가며 열정의 여름을 났다. 명예교수님들의 여름도 그러시다고 했다. 궁금하다며 욕심난다고 가져오라 하신다. 나를 뭘 믿고 보자고 하시는지 어떤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그 자리에 계실 만큼의 인품이 있으시다. 학교로 가는 길은 잡스러운 절차와 준비물이 없어서 참 좋다. 교수식당에서 브로콜리카레 케찹파스타 순대볶음 춘권 동그랑땡 유부어묵국 김치 송암샘 비운 점심자리 소정샘께 아무 말도 없이 받고만 왔다. 오늘로 우체국 택배 50% 108면 두 번씩 전면을 받아 경북대도서관 자료까지 스캔을 마쳤다. 108면 또 108면이었다. 내가 애써 찾던 것이 오늘 받은 그 안에 있다. 감사하다.

서예/자방고전 2018.09.07

김규진 난죽보

https://blog.daum.net/inkbook/12861146 해강 김규진이 궁금해서 386세대가 밖으로 나왔다. 공부하는 곳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보조의자를 놓았는데도 모자라 통로까지 꽉 채우고 출입구에 서고.... 해강 김규진 글씨와 영조 어린시절 서화지도를 맡았던 일이 blog.daum.net https://blog.daum.net/inkbook/12861264 근대서화 - 봄 새벽을 깨우다(심전 안중식 100주기 특별전) 젊은 친구들이, "우리가 친일파라고 배운 이름들이 여기 다 있어." 한다. 그림 속에는 분노의 날카로움이 있고 단절이 있고 꽁꽁묶인 난초가 있다. 그리고 공력의 정물화만 있다. 꺾이어 옛 솥에 blog.daum.net

미불 방원암기 - 석포 주계문

강감찬 축제때 방명록을 쓰시고 찾아오라 하셨다. 남현동서예교실 전시를 관람하시고는, '서예는 이렇게 가르쳐야 하는데, 아주 잘 가르치는 곳'이라는 찬사를 넘치게 하셨다. '국전,,, 그런거 안해요' 내 대답에 마음이 아프다 하셨다. 서예교실이 파행되고 인사못드린 분들께 커피를 싸들고 찾아뵙기로 했다. 그때 이력서를 하나 달라 하시며 또 한번 내 필체를 보시고는 '필적이 워낙 좋구먼!!!'의 찬사로 나를 들뜨게 하셨다. 선생님의 책을 한 권 주셨고 내 오래 묵은 붓을 손수 물에 씻어 강아지빗으로 고루 쓸어내리시며 깨끗하게 만들어주셨다. 화선지를 가로로 놓으시고는 내 그 큰 붓으로 편안하게 필을 내려쓰시던 느낌이 깊이 와 닿았다. 넓은 화선지에 큰 붓으로 내는 작고 가는 글씨 마치 개울물이 내려오다 돌을 타..

서예/법첩임서 2017.05.26

중국이라는 명칭의 유래

중국어 한자의 어원 - 한자문화만필, 저자 조선탁, 역자 송강호, 지식과교양, 2011 30 ~ 35쪽 '중국'이라고 할 때의 '國'자는 최초에는 지역`구역을 뜻하는 '域'이었다. 청말 문자학자인 서호徐灝는 그의 저서 '설문해자주전'에서 '봉토 강역을 '域'이라 하였다. 고대에는 '역或'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위囗'자가 더해져서 '國'자가 되었고 '土'가 더해져서 '域'자가 되면서 두 개의  다른 의미를 지닌 자로 구별되었다'고 하였다.   한자의 어원상에서 볼 때 國과 域은 최초에는 하나의 문자였으며 중국이라는 말은 최초에는 域中이라는 의미였다. 역중은 중국이라고 불렀으며 나머지 변경지역은 사이四夷 만이蠻夷 만맥蠻貊 등으로 불렀다. '예기`중용'에 '그러므로 명성이 중국에 넘쳐서 만맥에까지 이르렀다'고..

서예/자방고전 2017.03.09